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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Sep 10. 2019

오늘 날씨엔? 돈가스! 오늘 기분은? 돈가스!

일상의 흔적 84

9월 7일, 태풍 링링이 지나가는 중. 태풍이 와도 입맛은 살아있다.

전포역 인근에 돈가스 집이 생겼다. 수수하지만 굉장하다는 이 맛집의 소식을 듣고 저번 주부터 입맛을 다셨다. 돈가스는 내가 죽기 전 마지막 식사로 먹고 싶을 만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 더욱 애가 탔다. 바쁜 시간을 쪼개도 보고 머리를 굴려보다가 결국 주말 오전 제일 첫 손님이 돼보자고 마음먹고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약속 전날까지도 우린 태풍 링링의 소식에 번복을 거듭했다. 시간 단위로 링링의 경로를 파악하고 이리저리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고심하다가 결국, '돈가스가 먹고 싶은데 태풍 따위가 내 앞길을 막다니, 먹자 먹어! 가자!'로 결론이 났다. 무식한 용자들은 그렇게 바람에 휘청이는 우산대를 부여잡고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흔들어가며 집을 나섰다.


예상대로 우린 가게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한적한 가게에 앉아 딱 2인분, 우리만을 위한 돈가스 제조과정까지 흐뭇하게 지켜봤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기다림은 늘 지루함이 없다. 소금과 겨자 등이 담긴 접시와 등심, 특등심, 안심으로 이루어진 돈가스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땐 너무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꾹 막았다.


고개를 들어 마주친 친구의 눈빛이 나와 다르지 않았다. 다소 성의 없는 사진 한 장 만을 찍고 가장 연한 안심부터 집어 소금에 찍었다. 마주 앉은 사람은 눈치 볼 것 없는 절친이니 베어 먹는 것 따위 없이 한입에 작고 동그란 돈가스를 집어넣었다. 입에 넣고 한입한입 꼭꼭 씹으면서 이 태풍을 헤치고 나온 보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짭짤한 소금이 혀를 먼저 자극하고 바삭한 튀김옷을 지나 두툼한 고기를 씹자마자 육즙이 입을 꽉 채웠다. 부드러운 안심은 두툼한 두께에도 포근한 식감을 줬고 산뜻한 기름 향과 기분 좋은 육향이 올라왔다. 지방이 섞인 특등심은 고소한 맛을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하고 등심은 단단한 육질로 씹는 맛을 더했다.


이렇게나 맛있는 돈가스라니! 친구와 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없이 미간으로 표현했다. 먹는 동안 말은 사치였다. 서로 혼밥 하는 사람처럼 눈 앞에 음식에만 집중하고 천천히 급하지 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돈가스를 즐겼다. 친구의 얼굴에서 행복이 보인다. 행복이란 이렇게 가까이에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 거였다.


가게에 어느새 손님이 가득차고 우리의 접시가 비워질 때쯤 친구와 난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하 잘먹었다, 진짜 맛있어!' 행복한 주말, 토요일의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우린 이렇게나 단순한 사람들이다. 맛집을 찾아낸 것, 온전히 여유로운 식사를 즐긴 것, 날씨에 상관없이 오롯이 즐긴 식사에 행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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