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Sep 27. 2019

너와 가까운 곳에 있겠다는 말

일상의 흔적 89

9월 25일, 더운데 춥고 추운데 더운 이상한 날씨. 친구의 말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륜이 온천천에 맥주펍을 오픈했다. 물론 아직 인테리어에 좀 더 디테일을 만져야 하고 가스도 다음 주에나 설치되어 들어올 예정이지만 어쨌든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한가한(아마 손님이 우리밖에 없을) 지금 놀러 가기로 했다. 알코올 분해요소가 없어 술을 잘 못 마시는 날 대신 매상을 올려줄 컨디션 좋은 친구를 데려갔다.


도면으로만 봤던 가게는 생각보다 더 넓고 예뻤다. 륜의 취향이 곳곳에 배여 작은 문 손잡이까지 디테일을 더했다. 륜이 추천하는 가장 예쁘고 좋은 자리에 앉아 맥주를 기다렸다. 반듯한 접시에 얹어진 과일과 살라미, 치즈케이크까지 테이블을 채우고, 각자의 입맛이 반영된 맥주도 자리했다. 기대에 찬 친구에 눈빛에 괜히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시원한 맥주에 짭짤하고 달콤한 안주, 좋은 노래까지 기분 좋은 밤이었다. 한 달 만에 만난 친구와도 신나게 그동안의 일상을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퇴사를 앞두고 있고 난 귀향을 앞둔 상태였기에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맛있는 맥주를 곁들여 회사 험담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신나게 씹고 맛보던 중 내 얘기를 하며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우린 매달 만나는 사이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 건 겨우 1달도 채 되지 않지만 누구보다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심지어 우리도 신기한 일이었다. 친구와 얘기하는 것은 늘 재밌다. 좋은 경청의 자세를 하고 있는 친구이기에, 누구보다 깊은 공감을 해주는 친구이기에 만나면 서로 마음속 쌓인 말들을 꺼낸다.


친구는 부산을 떠나 제주도로 간다고 했을 때, 아쉽지만 맞는 일이라고 해줬다. '너의 결정이 그렇다면 맞는 거지. 잘 생각했어.'라고 해준 첫 번째 친구였다. 그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는 낯간지러운 말은 못 건넸지만 고마웠다. 내 결정을 믿어주고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던 내 친구.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친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가까운 곳에 있을게. 몸이 가깝다고 진짜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 지금처럼 매달이 아니라

1년에 한 번 보게 돼도, 가까운 곳에 내가 있을게."

헤헤-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마주 웃었다. 사실 찡한 감정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가까운 곳에 있을게'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제주도로 내려가기로 결심한 이후 묘한 불안감이 들었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곳에서 고립될 것만 같았었다. 겨우 다져놓은 내 인간관계가 모두 없어질 거라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문득문득 외로웠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만 나도 결국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이 되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마음 가까이 남아줄 것이라는. 사는 곳이 달라진다고 쉽게 끊어질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해졌다. 친구와 인사하고 집으로 가는 길, 친구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너와 가까운 곳에 내가 있을게.'

작가의 이전글 옥구슬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