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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01. 2019

손에 쥐고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른다

일상의 흔적 91

9월 30일, 다시 여름이 온 것 같은 습하고 더운 날씨. 나도 그땐 몰랐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 부모님 얘기가 나왔다. 둘 다 타향살이 중이기에 연락은 얼마나 하는지, 집엔 몇 번이나 내려가는지, 내려가면 어떻게 보내고 오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내 얘기를 듣던 친구는 나처럼은 못하겠다며 웃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에 따라 기준이 다르니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는 없지 않을까.


나는 엄마와 매일 통화한다. 서로 시간이 안 맞아 짧게 인사만 하고 끊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집엔 자주 가진 못한다. 아무래도 비행기를 타야 하고 표값이 비싼 편이라, 적어도 일 년에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는 가려고 노력한다. 내려가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보낸다.(만날 친구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엄마가 내 베프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굴진 않았다.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자취까지 하면서 얻은 자유는 날 무심한 딸로 만들었다. 엄마와 떨어져 섭섭하다고 운 것은 딱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학교나 알바에서 만난 친구들과 노는 것에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고, 걱정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았다. 방학이 돼도 내려가지 않거나 내려가도 친구들을 만나서 이리저리 나가는데 급급했다. 그땐 부모님보단 친구가 더 좋았고 내 삶이 더 우선이었다.


이런 내가 바뀐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 손은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꼭 쥐고 있어도 이 손이 언제 없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손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얼마나 따뜻했는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았다. 남겨진 내 한쪽 손은 아직도 시리고 차갑다.


산책하자고 할 때 같이 나가줄걸, 사다 줄 수 있을 때 툴툴거리지 말고 맛있는 거 사다줄껄, 슬그머니 손 잡을 때 귀찮다고 빼지 말걸, 같이 있을 땐 핸드폰 좀 보지 말걸, 좀 더 다정하게 예쁜 말만 해줄걸,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은 말을 할걸, 그때 그 시간이 귀한 줄 알았다면 그랬을 텐데.


더 늦기 전에 엄마와는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을 쌓고 싶었다. 매일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투닥거려도 붙어 있고, 오글거리고 부끄럽지만 애정표현도 하고, 핸드폰 가득 엄마의 사진으로 채웠다. 언젠가 엄마의 손을 놓아줘야 할 그날이 와도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다면, 남은 손이 차갑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이건 나를 위한 이기적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친구는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알면서도 결국 행동으론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공감했다. 소중한 것을 잃기 전엔  그것이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에 큰 구멍이 난 느낌은 실제로 크게 다쳐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실제로 경험한 것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라는 말을 건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많은 추억을 쌓아두라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늘이니까, 지나간 어제와 만날 수 없는 내일에 의미를 두지 말고 한 번뿐인 오늘을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해줬다. 처음은 쉽지 않고, 투닥거리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뿌듯한 언젠가가 올 것이다.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을 매일같이 생각한다. 소중한 이와 몇 번의 이별을 거치고 나니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만날 수 없는 내일로 미루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늘'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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