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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16. 2021

너에게 난, 어떤 의미일까

일상의 흔적 133

10월 15일,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와 세찬 비. 너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내듯 글을 써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되기 때문에 쓰는 글에는 마음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형식에 맞춰 써내는 글에 지쳐 브런치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퇴근 후엔 글자를 보는 것조차 지겨워 자막 있는 영화조차 멀리했던....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인원이 충원되고 이제 어느 정도 숨 돌리고 나니 이렇게 계절이 지나간다. 그동안 나에게 은근하게 브런치 글이 읽고 싶다던 당신의 말이 떠올라, 당신이 잠든 새벽에 몰래 핸드폰을 켰다.


고요히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 지나왔던 우리의 계절이 떠올랐다. 쌀쌀한 초겨울에 처음 만나 수줍은  향기와 시작해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까지 당신은 한결같이 내 곁에 있어줬다. 사실 같이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걱정이 앞섰다. 어릴 때부터 외동으로 컸고 오랜 자취 생활로 누군가와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고 사이좋게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친구나 친한 언니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같은 모양대로 사는 사람이 없어 그저 부딪히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규칙을 정해야 한다,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고 포기해야 한다, 생활비 통장은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조언이 쏟아졌지만 지나고 보니 사실 중요한 것은 결국 서로였다. 당신은 나에게  번도 "" "굳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따라주었다. 그땐 회사도 많이 바쁘고 힘들 때였건만,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다시 집안일을 해줄 때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온전히 나를 품어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다. 있는 그대로 날것의 나를 보여사람도 네가 처음이었다. 부모님에게도 기대지 않고 약한 소리 하지 않는 나건만, 당신에기대고 싶고  속으로 숨어 가만히 웅크리고 싶은 감정이 낯설고도 따뜻했다. 주변 사람 누구도 보지 못했던 밑바닥에 있는 진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네가 차분하고 침착하게  감정을 밖으로 이끌고 스스로 진짜 말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말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덕분이었다. 그때마다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환한 얼굴 때문이었을까, 회사에서 너무 힘들거나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플 때면 괜히 투정 부리고 토닥거림을 받곤 했다. 괜한 일로 생떼를 부리면서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떤 변명도 없이 무조건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하는 너에게... 나도 미안하지만 가끔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괜히 더 얄밉게 굴곤 했다. 하지만 네 안타깝고 슬픈 표정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건 나에게도 힘든 일이다. 금세 마음을 풀고 너에게 손을 뻗으면 지체 없이 안아주는 네 품이 행복했다.


든든한 네 팔이 온몸을 감싸고 따뜻한 품에 머리를 넣어 웅얼거릴 때면 내 쉼터를 찾은 것 같은 안락함을 느꼈다. 가끔 생떼를 부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면 늘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넌 항상 나에게 이런 마법 같은 문장을 말했다. 다정한 네 덕분에 난 무덥고 힘든 여름을 흔한 감기나 열병 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너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 보물" "내 빛"

언젠가부터 나에게 네가 자주 하는 말이다. 넌 어둠 속에서 헤매던 너에게 내가 빛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근데 그건 알까, 나도 마찬가지라는 걸. 우린 이렇게 서로의 운명인가 보다. 낯간지러운 글을 쓰자니 괜히 부끄러워 검게 물든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가 만난 날처럼 어두운 하늘에서 홀로 선명하게 빛을 뿌리고 있는 반달이 보였다. 손을 덜덜 떨고 목소리도 잠겨 큼큼거리지만 눈만은 올곧게 나를 바라봤던 네 눈빛이 떠오르는 날이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 천진하게 보이는 네 얼굴을 가만히 보다 조용히 입을 맞췄다. 귀여운 내 반달이, 언제 어디서든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알아주길. 내가 늘 고마워한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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