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 캐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아들과 남편에게 물었다.
“미국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야?”
나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브라이스 캐년"이었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은 우리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미국의 거대한 자연을 처음으로 마주한 여행이었고,
많은 고생을 겪은 탓에 그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남은 듯하다.
브라이스 캐년 안내 센터에서 1~2시간 정도 걸리는 트레일을 추천받았다.
그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직원이 권한 스노우 체인을 빌려 군데군데 눈이 쌓인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안개가 짙게 깔려 뷰포인트에서는 경치를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내려갈수록,
꿈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으로는 1/100도 담기지 않을 듯한 붉은빛 캐년이,
발걸음마다 우리를 설레게 했다.
트레일은 내리막으로 시작해 다시 올라오는 코스로 일반적인 등산과는 반대였다.
내리막길은 눈이 쌓여 미끄러웠지만, 스노우 체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캐년 아래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는 등산에 적합한 옷차림도 아니었고
식량도 간단한 간식만 챙겨 온 상태였다.
그리고 문제는,
다시 그 가파른 캐년을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지친 우리는 점점 대화가 줄었고,
웃음도 사라진 채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잘못 든 건지,
단순히 체력이 부족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상보다 무려 세 시간을 더 걸어야 주차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이 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우리가 지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브라이스 캐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다.
안개를 뚫고 내려가던 눈 덮인 길,
붉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풍경,
하얀 눈과 어우러진 기묘한 붉은 기둥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
모자와 옷 안에 맺히던 차가운 땀방울,
언제 도착하냐며 투덜대는 아이,
숨이 차 헐떡거리는 남편,
그리고 한~~참 남았는데
'거의 다 왔다'고 말해주던 반대편 등산객들.
(한국에서 등산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인 줄 )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우리 가족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코스의 길이는 고작 2.9마일(약 4.6km).
평지의 3마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상하게도,
다시 브라이스 캐년에 간다면 또 그 길을 걸으며 똑같은 장면들을 다시 눈에 담고 싶다
우리 가족에게 미국 대자연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미국의 국립공원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트레일부터 찾는다.
트레일을 걸어야 비로소 그곳의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를 다녀와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 화면으로 전 세계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추억을 쌓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다.
글이 조금 길어졌네요. 다음 편에서는 요즘 SNS에서 화제가 되는 그랜드 서클의 다른 세 곳을 직접 다녀온 경험과 그곳에서 느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