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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y 07. 2023

학대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밤잠이 오지 않아 보게 된 한 방송사의 오래전 다큐멘터리에서 아동학대를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부터 스무살이 된, 몸은 성인이지만 아직 마음은 여물지 못한 아이가 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왜 자신이 신체적인 정서적인 학대를 당했어야 했는지,  훈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폭력의 일상들이 자신들에게 가져온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방송은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내 아이의 훈육 문제가 그저 개인적인 가정사로 치부되고 있으며 타인은 그 학대의 일면을 목도하고도 외면시해버리는 사회풍조를 이야기했다,

아동학대는  매스컴에서 종종 보도 되는 극한의 일부 사례가 아니라, 80퍼센트가 넘는 보통의 가정에서 으레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수치가 실로 충격이었다.


나 역시 딸 아이를 훈육한답시고  등짝 스매싱도 해 보고, 머리도 쿵 쥐어 박아보고 말로도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붙어있는 시간이 하루종일인 날이 몇 개월씩 이어지던 코로나시기엔 특히나 평소보다 다정하지 못한 엄마였음은, 부끄럽게도 너무나 자명했다.


그때마다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이와 나는 각자의 생각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더랬다.

이러다가 점점 큰일 나겠구나 싶은 생각에  나는  행동 수정에 들어갔고,- 물론 내면의 나의 문제도 너무나 수두룩 했기에 그로 인해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고 나와 아이는 각기 열번의 심리상담을  받았다. 


일련의 시간을 흘려 보낸 뒤에 아이는 나의 변화됨을 감지하였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아이도  나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혼을 내는 그 순간 마녀처럼 변해버린 나의 눈빛과 귀가 따갑도록 호통치는 소리가 얼마나 아이에게 놀랍고 두려울만한 것이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만 하다.

그런 나를 거울로 비춰보았다면 나 조차도 그렇게 훈육을 가장한 화를 내고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나의 감정하나 조절하지 못한 추레한 모습을 보였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로하여금  반성과 반성을 끊임없이 거듭하게 하고 있다.


 나는 그때  어린시절 내 기억속 '나의 엄마'처럼 될까봐 진심 으로 두려웠었다.

내게 혼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위축된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듯  충격이었다.

흡사 흑마술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확 들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단지  지금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이들에게 그 순간의 장면들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계가 회복되었더라도, 나는 그 상흔이 절대 지워질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부디 지워지기를 바라는 바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끝없이 순회의 바퀴에 올라서서 그 날들의 상처로 매번 돌아가있는 것을 보면,깨끗하게 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이 자명하다.


아이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날, 아이와 어린이 경제 신문을 읽으면서였다. 때마침 일면에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그 주제로 아이의 입장과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 4학년이었던 아이는 제법 생각이 자라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하곤 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와 고양이 등 동물은 때리면 안된다고 하면서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때리며 혼을 내는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사회 전면에서 반려동물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동물들에 대한 학대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실로 상당하였다.

 심지어 사람 아기보다 개나 고양이 등의 Pet을 애면글면하며 키우는 모습에  갸우뚱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 가족도 그리 애지중지하면서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데, 본인의 '사람 아이'는 왜 방치하고 때리고 학대를 하게 되는 것일까?

 가히 악마적이라고 할만큼의 수준으로 아이를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하는 사건이 늘고,갈수록 사람이 끔찍해지고 있다.

고문의 수준을 능히 넘어서는 수준의 학대가 지면에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숱하게 얼굴을 내민다.

자주 벌어지는 반복되는 뉴스로 소비되는 것 같아, 이제는 그 기사를 접하면서도 점점 덤덤해져가는 사회가 무섭다.


나라가 보살피지 않는 학대 받는 아이들, 그들은 너무나 방치되어 있다.

저 가정사란 이유로 외면하고,대책없이 그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원 가정으로 내몰아버리고, 또 다시 학대의 고리안에 아이들을 가둬버리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아이들은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 마저 잊고 지레 포기하게 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 뿜어낼 수 있는 영향력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떤 선택지들의 그들에게 주어질 것인가?

 삶에서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빛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동학대를 반대하고 아이들을 위한 행동에 전면에 나서는 '소리'낼 줄 아는 분들의 모임과 여러 단체에서는, 아동학대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는 <가정내의 훈육과 체벌>에 대한 원천금지법을 제안하고 있다.

갑작스런 시행은 수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하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이 아직까지도 조선시대의 유교 문화의 뿌리에  가르침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한채로 '쩔어 있는' 이런 문화 기반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역행이 존재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버티려는 힘을 이겨내야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이들의 편에 서서,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혼내지않고 대화로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백번 만번 이해하지만), 행복한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서 마땅히 지나야 할 가시밭길이 서둘러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아이가,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가 살게 될 이어가는 세상에는,

모든 종류의 학대에서 자유로운 그저 순수한 아이들과 바른 부모,좋은  어른들이 존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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