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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Apr 02. 2024

제 3자로 사춘기 마주하기

나는 너의 사춘기를 지지하고 응원해.


아이는 올해 중2, 열 다섯살이다. 



북한에서 쳐 들어와도 못 이길 존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인 중2 사춘기를 목전에 두고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아이는 그렇게 감정의 폭이 널뛸 아이가 아니라고 내 멋대로 단정지어둔 탓이었을지 모른다.

참 희한하게도 학년이 올라가자마자 아이는 외모 관심도, 친구에 대한 몰입도, 종종 냉기 어린 눈빛을 쏘는 일도 늘어갔다. 말 속에 숨은 가시가 이렇게나 따가울 수 있구나 싶어 문득 놀라는 일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조금 지나친 투정과 애교정도로 봐 줄 수 있을만큼의 '아량'이 내게 남아있다. 

중2의 시간이 안으로 안으로 치열하게 깊어갈수록 글쎄... 나의 이런 마음이 애정으로 계속 존치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갱년기에 겪을 나의 폭주를 예상하며 지금 이 아이의 사춘기를 '마땅히' 감내해 주어야 한다는 책무를 마음 한 켠에 덤덤하게 눌러 담고 있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아이의 '사춘기'를 마주한다. 

나의 사춘기가 어떠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놓고 감정을 표출 할 수 없는 분위기의 가정이었기에 참으로 고분고분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사춘기를 한꺼번에 앓느라 병이 날 만큼 힘이 들었다.

그 이후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제 나이에 겪어야 할 것들은 제 시게에 제대로! 자연스레 겪어가게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해야 어른이 되어서야 다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아플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어쩌면 그 이유였을 것이다. 

통화하다가 벌어진 아이와의 말 싸움에 전화를 끊고나서,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어린 애 처럼 울고마는 일이 생겼어도 내가 금방 괜찮아질 수 있는 것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서로 화해하고  더 이상의 깊은 갈등으로 치닫지 않으려는 현명함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도, 아이의 마음에 풀지 못한 '한'과도 같은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고민과 뒤섞여 끊임없이 고군분투 중인 그이유도,

나의 앓지 못한 사춘기와 남다른 개인사와 맞닿아 있다. 



아이의 사춘기의 시작을 알렸던 초등 고학년 시기부터 '사춘기'에 대한 독서를 참 열심히도 했다. 

평범한 사춘기를 제대로 겪게끔 하고픈 마음으로 사춘기의 특징에 대한 공부를 하고 먼저 경험한 선배맘들의 '사례'들을 귀기울여 들었다. 

유독 심하게 앓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에이, 내 아이는 저렇게까지는 안 올걸.'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다시 생각한다. 

단지 아이 혼자 외롭게 곪아갈 일 따위들이 부디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이럴 때일 수록 부모 품의 온도가 얼마나 따뜻해야 하는지, 부모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믿음과 염려를 담고 있어야 하는지 , 아이에게 얼마나 진심이어야 하는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외동딸인 아이는 여전히 애교 많고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가끔 홱 하고 드러나는 하이드 같은 모습은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대화로 시작했다가 논리 없이 투닥거림으로 끝나는 애들 말싸움 같이 때때로 유치해져버리는 대화는, "사과해!" 라는 비논리적인 투정으로 다시 시작되었다가 풋! 하고 터지는 웃음으로 마무리 되곤 한다. 염려와 달리 사실 그리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단지, 이제 갓 사춘기 아이엄마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가장 하고픈 말은, 사춘기의 '당사자'가 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아이와 같이 감정의 기폭선을 타며 앓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제 3자로서 아이의 널뛰는 뇌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주자는 것. 제 입으로'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 곁에서 가끔은 입을 닫아주는 것. 어깨를 두드려주고 안아주는 일을 더 많이 해 주자는 것. 기꺼이 너의 감정토로의 '한 마당'이 되어주자는 다짐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 아침도 아이는 거울 앞에 한참 서 있다 집을 나섰다. 

교복입은 옷 매무새를 한참 동안 가다듬더니, 내 눈엔 별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머리카락을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도 손질하는 아이를 보고  "넌, 정말 예쁜 아이구나! 너무 예쁘다.우리 딸~."하고 호들갑스럽게 칭찬했다. 

평범하고도 행복한 또 하나의 아침이었다.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아이의 사춘기를 나는 기꺼이, 고로 즐겁게 함께 보내주려 한다. 

가장 힘든 건 인생 최대의 '격변기'를 겪는 당사자일 것이므로.

비록 아이의 모습이 '살쾡이'와  '사랑스럽고 다정한 아이'의 상태를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할지라도, 부모는 그저 묵묵히 '넉넉한' 품을 벌려주고 있으면 그뿐이다.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는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제 3자'로서, 

나는 아이의 사춘기를 열렬히 지지한다. 

부디 이 시기를 제대로 잘 살아내주기만을, 나의 온 다정함을 가득하게 실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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