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
엄마에게 들어가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의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을 알고 싶다고.
나의 세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뇌 속의 모든 기제를 알아내어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기억들과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몸소 모든 것을 느껴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영화에서조차 아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상상만으로도 재미있기는 하다.
한편으로는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 따위를 들키게 될까봐 선뜻 그러라고 못 할 것 같긴 하다만 말이다.
아이가 나의 모든 궤적의 감정들을 내가 느낀 그대로 따라 읽어올 수 있다면 , 나는 온전하게 아이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있을까?
행여나 내가 눈물 흘리고 아팠던 순간들을 같이 아파하면서 힘들지는 않을까.
알게모르게 누군가에게 남기고 온 상처와 나쁜 감정들을 읽고 나를 혐오하게 되지는 않을까.
침울했던 시기의 나를 겪으며 같이 낮은 바닥으로 침잠하게 되지는 않을까.
농담처럼 던진 아이의 화두가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나는 여전히 그 꼬리에 매달려 상상을 한다.
과거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오만가지 감정을 다시금 마주하는 일인 것 같다.
모든 생애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고 그 감정이 옅어지고 바래지지 않는다면, 제 정신으로 살아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벌써 삶의 중반에 선 나를 , 내 위치를 점검하게 된다.
그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이 정도면 스스로에게도 너무 부끄럽지는 않았다고 말해 줄 수 있을만큼이라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과 감정 따위가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아픈 감정 같은 것들이,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이, 온통 회색빛 같았던 우울한 청춘의 한 시기의 내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재미있고 웃음나고 어리숙했던 에피소드들과 서툴렀던 연애 이야기 따위를 버무려 전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엄마의 연애 이야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알고 있다며, 은근한 자부심 따위마저 느끼는 아이다.
아빠에게는 쉿! 하고 단서조항을 먼저 붙이고, 하나하나 꼬치꼬치 신나서 캐묻는 아이의 표정을 보았을 때, 뭐가 그리 궁금할까 싶었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 줄 수 있어 좋았다.
언젠가 아이도 겪을 스무살의 연애와 푸릇한 감정들의 상상 속에 젊고 풋풋한 엄마가 있을 것이다.
함께 보던 앨범 속에 대학시절의 내가 있다.
사랑이 전부였던 맑았던 사람이 있다.
"엄마 예뻤네~." 하고 말해주는 아이가 내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나의 어린아이 시절과 청춘의 시절을 다시금 도화지에 그려주고 마음껏 설렘으로 상상해주는 아이가 있어 나는 여전히 젊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
참 푸르르다.
짙은 녹색으로 번지는 이 계절에 오래 전의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