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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Jul 15. 2022

동물과 식물은 한 집에 키울 수 없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화분에 식물을 기르기 힘들다. 둘 다 한 집에서 키우게 되면 어느 쪽이든 행복하자고 키우는 건데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그렇다고 천장에 매달아 놓는 화분이나 담쟁이만을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조차 고양이에겐 좋은 먹잇감이 될 테다. 동물이냐, 식물이냐 선택하지 않으면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내게 더 행복한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의 근원적 에너지, 하지만 너무 강하거나 폭발하면 오히려 종국에는 죽음으로 몰고 갈 에너지, 화성, 전쟁의 신 Mars, 불 원소의 화기야 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태양빛이 우리를 살리지만 돋보기로 한점에 모으면 뭐든 타 버리고 만다. 생에는 적당한 거리두기와 선택이 필수다. 


2014년에 술펀 플랫폼으로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선정되어 목동에 있는 함께 일하는 재단(이하 함재)에 입주했다. 여느 공용 공간들이 대부분 그렇듯 언젠가 누군가에게 선물되었으나 이제는 죽어가는 화분들이 구석탱이에서 시들거나 말라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살아나기 힘들어 보였지만 길고 커다란 금전수(그때는 식물 이름은 몰랐다) 한 줄기가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길래 나무젓가락으로 흙을 파내어 뿌리째 꺼냈다. 재활용에 버려질 페트병 하나를 자르고 밑바닥에 달군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다시 심었다. 


2017년에 고려대 산학관 LG소셜캠퍼스가 막 생기자마자 첫입주를 하니 우리 사무실 바로 앞 공용공간 기둥 앞에 내 키만큼 커다란 음지 식물 화분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때 소캠은 엘베를 기준으로 좌우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공동관리센터나 탕비실은 전부 오른쪽에 있었고 우리는 왼쪽 구역 가장 안쪽에 있던 사무실이어서 이쪽으로는 각 회사에 일하는 사람들 외엔 한산한 편이었다.


음지 식물들은 햇빛도 거의 필요없고 물도 자주 줄 필요가 없어서 잘 죽지 않지만 물을 오래 주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당연히 화분에 물 주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2년이 지나고 을지로에 공간 2개를 동시에 오픈하면서 고대 사무실을 잘 가지 않게 됐다. 


그러다 결국 소캠에선 짐을 빼고 을지로로 전부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나가면서 내가 없더라도 화분에 꼭 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센터 사무실에 마치 유언처럼 간곡히 부탁을 하고 나왔다. 몇 달이 지나 우편물을 가지러 갈 일이 있어 들러 보니 다행히 화분은 죽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올해 3월에 작년 같이 일했던 고대 포닥이 최연소 세종대 컴싸 교수로 가게 됐다. 뭘 살까 하다가 술 선물과 함께 내가 함재에서부터 8년 간 키운 금전수를 분갈이 할 준비를 한 다음 가져갔다. 흙만 좀 사다 달라고 부탁드리고 함께 점심을 먹고 교수 연구실에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런데 이때 한 뿌리를 박 교수에게 분갈이 해 주고 막상 남아있던 내 뿌리는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2주 넘게 박스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다이소 화분을 부랴부랴 사와 옮겨 심었는데 이상하게 이파리가 하나 둘 천천히 삭아갔다. 물을 잘못 줬는지 뿌리에 곰팡이가 쓸어버린 것이다. 


썩어가는 뿌리를 도려내고 다시 심었지만 계속 죽어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도저히 손 쓸 수가 없어서 전부 가지치기를 해 버리고 제일 튼튼한 줄기와 이파리를 물꽂이 했다. 간절히 빌었다. ‘네가 죽으면 술펀도 죽어. 꼭 살아야 한다. 반드시 살리자.’


죽어라 뿌리가 안 돋아났다. 보통 물꽂이하면 2-3일, 적어도 일주일 안 에는 기미가 보이는데 3주가 지나고서야 드디어 돋아나는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머리카락처럼 자리기 시작했다. 가지치기 한 줄기, 물꽂이 한 4개 이파리 전부, 심지어 가지치기 당한 줄기에서도 새순이 돋아났다. 전부 살고 개체수는 더 많아졌다. 


오늘 아침에는 물꽂이 한 줄기 하나를 흙에 옮겨 심었다. 이파리들도 꼬물거리며 뿌리가 많이 돋아났다. 이 아이들도 곧 흙으로 옮겨 심을 것이다. 좀 많이 자라기 시작하면 초기 창업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을 것 같다. 함재에서 한번, 이번에 한번 더, 아주 끈질기게 두번을 살아났다.


최근에 자살 충동을 가진 심각한 우울증 상태의 사람을 잠깐 상담해 주게 됐는데 이상하게 “살아보겠습니다”하는 말이 더 불안하게 들리더라. 왜냐면 정말 살 사람은 “살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어떻게든 살려고 한다. 잘 죽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삶이 본능이고 죽음이 역본능이다. 역본능으로 역행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기분장애 그래프의 최저점이 아닌 생에 대한 의지가 상승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울증의 사람들은 자살한다. 


역대 대통령 중 자살한 사람이 누군지를 보라. 강한 사람이 죽는다. 나약한 이들은 죽지 못 한다. 고 황현산 작가의 말처럼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무서우리만치 집착은 없다. 내가 그렇다. 지금 당장 출근하는 길에 차에 치어 죽어도 후회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하고 강하게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좋은 삶은 운이 따라야 가능하지만 나쁜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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