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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Aug 29. 2024

나 떨어졌어..

< 좌절 >, < 위로 >에 대하여 

둘째는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한다. 쑥스럽고 부담스럽고, 심지어 두렵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누나가 반장선거에 나가서 발표를 했다고 하니, 동생은 두 팔을 있는 대로 활짝 펼치며


"엄마,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려면, 용기가

이—————————————————만큼 필요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용기를 그렇게 많이 냈던 누나는 2표 차이로 선거에서 떨어졌다. 용기가 자동으로 장착되는 기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선거쯤 나가려면, 우주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 만큼 아이가 애를 써야 한다. 용기를 냈을 때, 결과가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나는 용기를 내면 
세상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어
자꾸 자고만 싶고
숨고만 싶고
숨이 막혀 
세상이 미워.. 



생애 처음으로 나간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날 밤에 첫째는 이렇게 말하며, 마음이 98퍼센트 썩었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그래도 용기를 낸 너는 정말 대단해!'라는 문장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 말은 아이의 말 문을 더 닿게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낸 너는 정말 대단해!'라는 문장은 사실 아이의 좌절이나 슬픔과는 온도차가 있다. 분석하자면, 이 문장은 슬퍼하고 있는 아이가 어서 빨리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만들어낸 문장이다. 슬픔의 늪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서, 아이가 그 손을 잡고 늪을 빠져나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말이다. 


그런데 슬픈 아이에게는 충분히 슬플 시간이 필요한지, 첫째는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픈 자신의 곁에 내가 다가와 함께 앉아있길 바랐다. 아마도 아이 스스로 그것을 털고 일어날 때까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머리를 털어서 더 적절한 문장을 찾아내고 싶었다. 내가 슬플 때 듣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면서..  


우리 딸, 많이 속상하겠다.. 
엄마도 예전에 선거에서 떨어져서 엄청 속상했어...



사실 아이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하다. 아이가 얼른 그것을 털고 일어나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아이 곁에 앉아있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렇지만, 충분히 슬퍼하고 나서 스스로 그것을 털고 일어서는 순간의 홀가분함을 아이가 누리길 또 바라니.. 견뎌보는 수밖에.. 


이런 경험들이 아이에게 쌓여간다면, 언젠가는 좌절을 회복해 내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 테니..  






슬픔이라는 바닷속에 있는 아이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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