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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Mar 13. 2024

첫째가 우물에서 나왔다.

< 친밀 >에 대하여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하늘은 딱 우물 입구의 지름만 하다. 그 개구리가 계속 우물 바닥에서만 산다면, 그 하늘이 전부인 줄 알 테니, 개구리에게 문제 될 건 없다. 그런데 나의 첫아기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첫째를 모유수유할 때를 기억한다. 그때 아이의 눈동자는 엄마로 꽉 차있었다. 그 시절 아이에게 엄마는 자신을 지켜주는 하늘과도 같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는 땅과도 같았다. 그러던 아이가 자라나서 이제 머리가 내 턱에 닿는다. 그 사이 아이는 키만 큰 게 아니라, 다리의 힘도 무척 세졌다. 그래서 지금 '입구까지 닿을 만큼' 우물을 거의 다 기어올라왔다. 그러면서 아이는 눈치챘다.



하늘이 점점 커진다는 사실



그리고, 하늘 같던 엄마는 사실 하늘이 아니라는 것도 아이는 알아가고 있다.


아이는 자라며 엄마가 피아노를 치는 것이며, 영어로 말하는 것이 근사하다고 했다. 엄마처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계란프라이와 계란말이가 맛있다고, 자신도 엄마처럼 계란 요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며 아이는 10대에 진입했고, 학교나 세상에서 보고 배우는 것들이 늘다 보니, 엄마의 것들이 대부분 초급 수준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이제 엄마를 넘어서고 있다. 내 흥미와 적성이 아니어서 나에게는 초기 수준에 멈춰있는 것들이 첫째에게는 흥미이고 적성인 것들이 있다. 아이가 그것들에서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계란프라이와 계란말이. 나는 그냥 대충 하는 것들인데, 아이는 그것에 진심이어서, 아이가 만드는 '써니싸이드업' 계란프라이는 정말 수준급이다. 겹겹이 같은 폭을 유지하는 계란말이도 그렇고.



그렇다면 나는 우물



'우물'이라고 해서, 나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저 '우물을 나온 개구리'이면 되는 것이니까. 결국 이것은 성장의 선순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생명이 엄마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한 개인’을 넘어서는 성장 말이다. 그리고 올챙이는 연못에서든, 우물에서든, 어디서 태어났든 ‘자신의 하늘을 찾아 나서는 개구리’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한편, 우물 입장에서는 ‘무너져버려’ 하늘을 닫아버리지 않은 게 어딘가. 개구리가 튀어나갈까 봐 계속 키를 높이는 우물이 아닌 게 어딘가. 그래서 말인데, 나는 요즘 아이에게 나의 허술한 겉과 속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더 드러내고 있다. 그럴 때면, 아이는 때론 실망하고, 때론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때론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내 느낌에 아이는 괜찮은 것 같다.


아이에게 엄마는 그저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존재'이고, 자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하늘이 열리고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 '아이의 하늘'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수줍음이 많지만, 다음 학기엔 반장선거에 나가보려고



며칠 전에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이가 자신의 하늘을 가졌다고 느꼈다.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고, 자신의 꿈과 바람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이제 자신의 세상을 찾아 떠나는 거다. 물론, 아이는 자신의 여행을 하다가 종종 놀라고 지칠 테니, 편히 쉴 안식처도 필요할 거다. 그때 아이의 이야기를 때론 흥미롭게, 때론 안타깝게, 때론 같이 분노도 하고, 때론 깔깔거리며 경청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상태이면 좋을지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수줍음이 많지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내보려고



아무래도 내가 바라는 그 대화를 아이와 나누기 위해서는, 내가 우물 상태로 남아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도 우물 밖의 개구리로 때론 흥미롭고, 안타깝고, 분노하고, 깔깔거리는 그런 '나만의 여행'을 살아야지 가능하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 첫째를 낳고, 보호해 준 그간의 우물은 문을 닫아야겠다. 대신 그 자리에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아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도록. 나도 여행에서 다녀오면 쉬게.  




오늘 동네에 새로 심긴 나무 한그루를 보았는데, 예뻐 보인 이유가 있었구나.




이제 우물을 닫는 기분이 흐뭇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운 것을 보면, 그 우물의 입구를 지켜내느라 나도 참 애썼는가 보다. 오늘은 고기 먹는 날! 축하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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