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이잖아

남탓은 쉽다

by 홍시

저녁이면 수영복 가방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한다. 저녁 수영장은 늘 북적이고, 더운 날씨일수록 자유수영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레일이 가득 찬다. 각자 다른 리듬과 호흡으로 수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며 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나도 가볍게 몸을 풀 겸 자유형을 시작한다. 열 바퀴쯤 돌았을까, 벽을 짚으려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의 큰 동작에 몸이 휘청였다. 간신히 피해서 부딪히진 않았지만, 속으로만 “아잇, 젠장~ 너 때문이잖아!” 하고 중얼거린다. 괜히 맥이 빠져 수영도, 재미도 끊겨버렸다.


기분을 달래려 레일을 옮겼다. 옆 레일에는 조용히, 아주 느린 템포로 수영하는 여성이 있었다. 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유형을 이어갔다. 그런데 몇 바퀴 돌기도 전에 그 여성은 사라지고, 레일엔 나 혼자만 남았다. 덕분에 속도가 한층 붙어 훨씬 가볍게 물살을 가를 수 있었다.


문득 아까 속으로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 말이 꼭 나 자신을 향한 것 같았다. 혹시 그 여성에게는 속도가 빠른 내가 방해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수영이 재미없어져 나가버렸을 수도 있다.


그 여성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너 때문에라는 남탓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정작 나의 탓은 쉽게 볼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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