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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Feb 22. 2024

늘 허덕이지만, 때로는 힘이 될 수 있는 외로움

<외로움의 모양> 이현정

'이 책은 언어로 쓰였지만,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프롤로그 <외로움의 모양>




외로움,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감정


'당신은 외로운가요?'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타인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외로움을 느끼지만,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타인이 여럿 존재해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혼자 있고 싶다가도 막상 혼자 있게 되면 혼자가 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방황만 하다 다시 타인을 갈망하기도 하고, 막상 갈망이 충족되면 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외롭다고 아우성치지만 그 외로움을 적절하게 잘 돌보지도, 보듬지도 못하는 현대인들. 곁에 있는 타인의 존재가 내 외로움을 희석시켜줄 것이라 믿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믿음은 좌절된 경험으로 남는다. 외로움을 느끼는 주체가 나인 것처럼, 외로움을 돌보는 주체도 나여야 하지만 대체 외로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외로움이란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모든 살아 숨 쉬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이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외로움의 모양들을 소개하기 전, 외로움에 대한 정의를 외로움과 비슷한 얼굴을 한 어휘들과 비교해서 알려주고 있다.


먼저, 고립(isolation). 고립은 '물리적으로 멀어져 혼자가 된 상태'를 뜻한다. 불시착한 무인도에 고립되어 생명을 근근이 이어가는 생존자가 떠오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은둔(seclusion). 은둔은 '은둔자'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 가는 어휘다. '물리적 고립 상태를 스스로 극단으로 추구하는 삶의 양태'를 뜻한다. 얼마 전에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숲속에서 3년 이어간 사마나 고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세 번째는 고독(solitude). 외로움의 얼굴과 가장 유사하게 보이는 단어. '자신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홀로 있는 존재 상태'를 뜻한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고 싶은 상태는 '고독'을 원한다는 의미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독할 수 없어 외롭다"라는.


마지막으로 외로움(loneliness)은 '존재 상태보다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 속 특정 경험에 의해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외로움이다.




사회 속의 나, 타인의 존재는 외로움의 이유이기도


저자는 책 속에서 다양한 외로움의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면담 인터뷰 방식으로 그들을 만나 그들의 외로움을 익명으로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감정의 영역인 외로움의 체감은 동일해 보일지라도,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개인의 상황은 모두 달랐다. 외로움에 수반하는 우울과 슬픔 같은 정서의 정도와 밀도도 외로움의 모양과 색깔만큼이나 개인마다 달랐다.


12가지의 외로움의 모양을 만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사회 속의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들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만나는 가정이라는 곳에서 부모라는 존재와 나의 관계, 성장하면서 만나는 또래 집단 속에서 맺는 내 경험,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상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만나는 예기치 못한 난관들... 크고 작은 환경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그 안의 또 다른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 그들의 존재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나. 내 의지와 무관한 통제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 그렇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우리.


내 의지로 이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내 의지만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자리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돌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타인의 돌봄은 곧 타인이라는 환경을 뜻하기도 하니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지내는지가 각자의 외로움의 정도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이 완벽하게 부재한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삶에 매 순간 함께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존재하듯, 사회 속에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외로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외로움이 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12가지 외로움의 모양 중,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외로움이라면 단연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외로움은 나의 힘'의 외로움. 외로움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한 순간이라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은 없다고 했지만, 그에게 외로움은 슬픔이나 우울이 아니라 힘인 것 같았다(240쪽).'


'적어도 그의 외로움은 어떤 부정적이거나 날카로운 기울은 띠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에게 외로움은 신체의 일부인 모양이었다(244쪽).'


이전까지 소개한 외로움들과 살짝 결이 달라 보이는 외로움의 모양에 내심 흡족했다. 사회 속에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가 타인의 존재가 오히려 부정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숙명이기도 하다. 타인이 곁에 있어도, 타인이 곁에 없어도 외로움은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하므로. 타인이 곁에 없어서 외롭고, 타인이 곁에 있어서 외로운 이 삶의 모순. 하지만 이 외로움이라는 것이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면, 이 고독한 외로움이 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외로움을 손과 같은 '신체의 일부'처럼 느낀다. 내 신체 일부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외로움이다. 때로는 외로움이 절친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때로는 외로움과 함께 춤추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한다. 책 속에서 무수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 음악의 선율에 빠져 그 안에 스며들어 나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외로움과 함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로움을 내 일부처럼 여기고 그것을 잘 보듬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두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고 외로움에 따스한 손을 내밀어 보자. 외로움은 내게 더 커다란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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