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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Oct 25. 2019

아이와의 여행은 힘들다는 당신에게

에필로그

아이와 여행을 다녀온 뒤 늘 블로그에 여행 기록을 남겨왔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다양한 여행지를 다녔어도 여행기를 남겨본 적이 거의 없는데 지난 2년 반 동안의 여행 기록은 꾸역꾸역 남겼다. 여행을 다녀온 뒤 산적한 회사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어떤 날은 생업을 미루면서까지 날 것의 여행기를 남겨두려 애썼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와 떠나는 여행엔 강렬한 sightseeing에서 오는 감흥은 많이 없지만 작은 시간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너무 사소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일일이 행복해했다. 빈약한 나의 두뇌가 그때의 행복을 흘려보내게 할 수 없었다.  매 순간 일렁이던 감정들이 행여 달아날까 하나하나 붙잡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기록들을  자주 꺼내보고 문장 하나에 사진 하나에 그 시간으로 돌아가 또다시 행복해했다.
 


평범한 우리의 여행기를 읽고 누군가는 감동을 받지만 누군가는 남의 이야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아이와의 여행이란 그렇게 술술 풀릴 수 없는 거라고, 여행은 현실의 육아가 여행지에서 계속될 뿐이라고. 내가 힘든 이야기는 쏙 빼놓고 좋은 이야기들만 동화처럼 나열해간 거라고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처음 여행지였던 제주도는, 말 그대로 현실 육아의 연장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10개월 아가는 쉬지 않고 울었고 초보 부모는 우는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쇼생크 탈출을 떠올리며 이 여행을 기대했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는, 아이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이따금 종일 집에 갇혀있는 나 자신이 어두움의 끝에 놓인 것 같았다. 힘들었다. 긴 터널에서 탈출해 잠시나마 제주도에서 안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제주도는 팀 로빈스의 멕시코가 되지 못했다. 나의 기대는 이러했다. 여행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좋으니까, 모름지기 일상과는 다른 것이 여행이니까 일상에서 벗어나 제주도를 거닐기만 해도 좋을 이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여기라고 다를 줄 알았느냐! 아둔하구나! 당황한 우리가 덤벙댈수록 아이는 더 울었다. 결국 가고 싶던 곳은 단 한 군데도 가지 못했다. 내가 원한 여행은 이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쟁이 블로그 놈들에게 속았다고, 나도 울었다.
 
하지만 아이가 25개월이 되던 때 괌을 시작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수많은 국내외 여행을 다녀온 지금, 제주도 여행을 되돌아보며 여행을 일상의 탈출이라고 여겼던 그 마음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반추해본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우는 건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고 조금 더 편안히 아이를 대했다면, 관광지에 연연하지 말고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조곤조곤 새로운 이 곳을 설명해주었다면 제주도가 우리의 마음에 바람을 넣어주는 역할 정도는 해주지 않았을까 되돌아본다. 이후의 여행에서 우리는 여행지의 육아가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결혼 전 아이 없이 다녔던 여행처럼 가고 싶은 곳을 가보지는 못하는 대신,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여행지의 시공간에 녹아드는 데 사용한다. 그저 자는 아이를 침대에 내버려 두고 살금살금 출근하는 아침이 아니라 아침 햇살에 함께 눈을 꿈뻑일 수 있는 아침이면 충분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우리 하마는 뭐 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할 필요 없이, 해변에서, 관광지에서, 버스에서, 택시에서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하루라면  족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일정이 어그러지면 그런대로 기껏 맛집이라고 찾아갔는데 맛없으면 그냥 그런대로. 즐거운 일은 온 마음과 세포를 열어 느끼고 그렇지 않은 일은 오로지 그 팩트만 받아들였다. 오늘은 우리의 일정이 어그러졌구나. 끝. 이런 자잘한 것들에 마음 두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아이와 함께 행복할 때가 많았지만, 의무도 책임도 벗어버린 여행지에서는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며, 생면부지 땅에 아는 이는 오직 우리밖에 없는 것을 느끼며, 일전에 이런 감동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종종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행복의 빈도수를 따지자면 여행지에서는 더 자주 벅찼다. 모든 시간이 마법같이 천천히 흘렀다. 모든 여행이 동화 같았고 여행이 일상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 고로 어느새 우리의 일상도 동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 내 껍데기는 현실에 둔 채 떠나본다. 여행지에서 제삼자의 입장으로 한국에 있는 나의 껍데기를 생각해본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혹은 적당히 열심히 살자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내려놓자고. 그럼에도 조금 더 힘내어보자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여러 가지 관전평을 내본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나는 어떤 엄마가 되길 바라는지,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가꿔가야 할지 생각해본다. 잘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상황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대부분의 날에 스스로를 다독여보는 것도 여행에서 다녀온 뒤 얻은 힘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캐리어 한가득 기저귀가 자리했지만 낯선 땅 빅아일랜드에서 종일 여기가 어디냐고 묻던 아가는 이제 여행 가기 전 그 나라에 대한 책까지 미리 읽고 준비하는 형아가 되었다. 처음엔 밤새도록 짐을 싸고도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빼놓고 와서 고난을 겪었던 우리도 이젠 떠나기 전 날 1시간도 안되어 완벽하게 짐을 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게임이라 한다면 고급 아이템을 몇 개 정도는 장착하고 있는 것 같다. 육아와 일이 정말 힘든 날에 선배들이 해주던 시간이 지나면 수월해진다는 그 말은 나에겐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여겼으나 조금씩 힘을 내며 살다 보니 정말로 나도 아이도 조금은 편해지고 익숙해진 날이 왔다. 여행의 이유 또한 늘어나고 있다. 처음엔 그저 여행지가 어디든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이유였다면 이제는 여행지를 느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행이 진화했고, 우리의 삶도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육아로 마음이 지친 사람들, 특히 나처럼 회사로 집으로 동분서주하며 혼돈 속에 사는 워킹맘들, 이렇게 버티며 사는데 여행 준비는 언제 하냐고 포기하지 말고 일단 어디든 떠나보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여행까지 가야 할까 싶겠지만 국내든 해외든 속는 셈 치고 짐을 꾸리고 낯선 곳에 한발 나가길 바란다.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고. 바쁜 일상은 내려놓고 앞날의 고민은 잠시 잊고 현재 우리가 있는 풍경이 얼마나 빛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크게 웃을 수 있는지만 알아가길 바란다. 나에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여행이 쉼이자 나아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여행에는 별빛이 내려 /  지난 2년간 아이와 함께한 여행 성장 기록.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문득 지치는 어느 날 여행을 계획하고 그 날을 기대하며 다시 일상을 소중히 살아내고 그러다 떠나는, 평범한 여행자의 빅아일랜드, 오아후, 발리, 오키나와, 싱가포르, 다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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