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에 낙담하지 말라. 재회에 앞서 작별은 필요하다.” -리처드
이별 후폭풍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내가 정리한 관계이고, 지칠 만큼 지친 상태여서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별하고 3일 이후부터 눈만 감으면 전에는 생각나지도 않던 즐거운 추억들이, 잘해줬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새벽에 언니와 친구들에게 전화해 후회되는 감정을 눈물, 콧물 쏟아가며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제일 가까운 나의 언니와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절대 다시 만날 생각은 하지도마. 다시 만나면 또 그렇게 돌고 도는 거야.”
“힘든 게 맞는 거야. 우는 게 맞는 거야. 하지만 연락할 생각은 하지 마라. 절대.”
이별이 힘든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 추억의 흔적들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애착오류적인 모습이 보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실패한 소유의 욕구가 미련이 남은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혹은 첫사랑 효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전 연인을 못 잊고 비교하며 거리를 두게 되는, 다양하게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나는 첫 이별 후 이 구질구질한 모습 모두 보인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의 이성적인 지지자들에 기대어 이별 후폭풍을 견뎌낸 거 같다.
그가 잘해주고, 그와 좋았던 기억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때마다 싸우고 부딪혔던 기억들로 눌러냈다.
눌러진다는 것은 헤어지는 것이 맞았다.
나의 첫 연애 때 상태가 애벌레였다면, 이별한 이후는 운동능력이 거의 없는 번데기 상태였다.
몇 년을 연애가 없는, 정제된 삶을 살며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많은 계획들을 해둔 것 같다. 30,40대의 나의 계획, 일, 꿈, 가족.
변태 과정을 거쳐 날개를 피려고 하니 몸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주변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너도 남자 좀 만나자. “
“쉬면 안 돼. 지금이 제일 물 들어올 때야. 네가 40대 되면 소개팅이 많이 들어올 거 같아? “
“너 진짜 결혼 안 할 거야? 다른 사람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
주변이 문제만이 아니다. 광화문의 한 서점을 갔는데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있으세요?”
“네? “
“혹시 직장인이신가요? “
“네, 그런데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남자친구는 혹시…”
“아녀… 없는데.. 왜”
“아, 저는 OO결혼정보회사인데요. 저희가 2-40대 싱글 남녀분 대상으로 무료로 연말 파티를 하고 있어서요. 참석 안 하시더라도 여기, (명함 건네며)
저희 본사 오셔서 결혼 상담받으러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내 이마에 “30대, 여성, 솔로, 결혼적령기”라고 적혀있나, 이 싱숭생숭한 마음이 나와있는 것도 아닌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연애와 결혼에 통상적인 시기가 있는 게 확실하다.
주변과 주변이 아닌 곳에서 제안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지금은 그 누구도 이런 명함을 주지도,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그래. 힘든 시기 잘 견뎌냈고, 새롭게 30대를 시작해 보자. 이성관계를 무겁게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받아들이자. 또 뭐 어때, 결혼 안 하더라도 연애는 할 수 있잖아?
사랑 경험해서 잃을 게 뭐 있겠어. 잃을 것도 없어. 더 이상.‘
많이 만나보란 주변의 말처럼 여러 사람을 만났고, 가벼운 썸도 타보고,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알았다.
내가 정말 좁고, 폐쇄적으로 살았구나. 남자도 여자처럼 같은 사람이고 다양한 성격과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단 과거에 내가 만났던 남자들이 나를 힘들게 했던 남자라는 염색체가 아닌,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의 부류뿐이었단 걸.
그리고 세상엔 매력적인 남자들도 많고, 그것을 나 스스로가 컨드롤을 잘했으면 되는 거구나,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아무리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아니라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한평생 정착 없이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는 나비로 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