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시 Apr 12. 2024

소꿉놀이

“결국 모든 것은 우스개다.” -찰리 채플린


“내가 아빠 역할을 할게. 네가 엄마를 해.”

“여보~ 다녀오셨어요?”

“응. (양말 벗는 시늉 하며) 오늘 저녁은 뭐예요? “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고난과 역경 없이 우리의 ”행복“에 집중하기만 하면 되는. 집은 꾸밀 필요가 없다. 그냥 이쁘게 완성된 집을 탁, 하고 놓으면 된다.

플라스틱 프라이팬에 흙을 담으면 스테이크가 되고, 풀잎 몇 개 뜯어다 올리면 샐러드가 완성이 된다. 원하는 게 있으면 숲 속 들어가서 실컷 쇼핑을 해오고,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 모래를 파보면 누군가 숨겨놓은 보물들로 즐거워할 수 있다.

노동의 시간은 5분. 함께 노는 시간은 종일인 우리만의 세상

 

 어릴 적 내가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부부의 모습들은 잘 차려진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고, 부모님을 따라간 모임들에는 죄다 부부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들만 보였다. (다들 잘 지내고 잘 사는 얘기만 골라서 했으니까.)

그땐 그냥 서로를 보는 표정이나 행동들이 보기 좋았고, 모든 부부가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여러 친구들의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며 부부가 꼭 행복하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라는 남자와 다른 또래 남자의 짓궂고 철없는 행동에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았고, 남자라는 종족들과는 먼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인생에 연애가 없던 것은 아니다. 첫 연애는 꽤 길었다. 약 7년.

스물두 살에 시작한 연애는 서른 전에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첫 연인은 고생이 많았다.

23살에 연애 경험 없고, 불만을 말하지 않고 쌓아두고 괜찮다고 하다 잠수 타버리고, 스킨십은 항상 삐걱대고 모르겠다고 하는, 세상 답답했던 나를 7년을 긁고 끄집어내 줬다.

나는 그런 그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좋아했고 존경했던 것 같다. 한 살 오빠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 예의 있고 어른스럽게 변하는 모습이라던지

인정받기 위해  몰두하고 해내는 모습이라던지, 한편으론 무섭지만 욱하고 내뱉는 성격들은 가끔씩 시원한 부분도 있었다.

연애를 하면 닮는다고 했나. 그와 지내는 세월 동안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의 성격을 많이 닮아갔다.

여리고 상처받을 줄만 알았던 성격은 꽤나 단단해졌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둘 다 할 말을 해버리는 성격이 되어버리니 팽팽한 대립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상대를 맞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함께해도 맞춰지지 않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표현을 했다. 우리는 맞지 않다고.

그는 크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다. 결국 그에게 몇 차례 이별을 고했다. 그제야 그는 그 맞춰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관계는 그렇게… 그렇게 휘어진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첫 연애의 끝은 이별이었고, 내가 결혼이라는 종속적인 제도와 맞지 않다는 확신을 줬다.

여러 문제를 돌고 돌며 관계를 어긋 내다가 결국 결혼 얘기로 헤어지게 되었으니까.

내가 건강상 아픈 시절에 그는 결혼을 권했다. 사실 이전부터 결혼 얘기를 종종 꺼냈지만, 우리는 어리다고 생각했고, 나는 농담으로 넘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다.

결혼을 해서 나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나를 지켜주기 위해 결혼을 하자고? 왜 나를 지켜주지? 그럼 나도 그를 지켜줘야 하나? 지금 나의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평생 함께 이렇게 지내자는 말이었음 괜찮았을 텐데. 왜 결혼이란 단어가 붙으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지?  

나는 결혼은 또 다른 책임과 부담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의 관계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정리가 됐다.


그리고 나는 뒤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이전 01화 비혼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