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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시 Jun 07. 2024

체크 아웃 리스트 1.

“웨딩홀”


왜 모든 일에는 체크리스트가 존재할까?

체크리스트란 업무를 점검하기 위해 작성하는 서식이며,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일을 실수 없이 하기 위해 작성하는 서식이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을 우리의 결혼식을 실수 없이, 즐겁게 잘 치르기 위해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많은 체크리스트들이 촤르르 화면을 가득 채웠고,

페이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체크리스트는 D-day로 되어있기도 하고, 항목으로 구분해놓기도 하고, 비용으로 구분하는 등 다양한 종류로 나와있었다.


‘이걸 다 하라고…?’


 결혼 준비에 주어진 기간이나 비용, 조건 같은 것들은 예비부부마다 천차만별이다. 서로 눈이 맞아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몇 년에 걸쳐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식의 로망에 온 마음과 시간과 돈을 다 쓰기도, 그저 조그맣게 본인들만의 식을 치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우리의 결혼준비 기간은 9개월이다. 프러포즈를 받은 것도, 상견례를 해서 날짜를 잡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1,2월 주말에 여러 성당을 다녔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성당에서 식을 치르고 싶었고, 마음에는 부모님을 따라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에 종종 명동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데 그때마다 결혼식을 하는 모습을 보면, 관광객과 하객들이 뒤엉켜 있어

우리가 원하는 ”성당에서의 결혼“에 대한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마다 여러 성당들을 다니며 우리와 어울릴만한 느낌의 성당을 찾기로 한 것이다.


성당


  대부분 성당의 결혼식은 연 1,2회 추첨으로 진행된다. 상반기&하반기로 나누거나 연말에 다음 해의 결혼식을 다 추첨해두기도 한다.

올해 결혼하자는 왕자님의 말대로, 아직 추첨을 진행하지 않고, 하객들이 오기 편한 위치에 있는 성당을 찾다 보니 몇 군데로 추려졌다.

그리고 한 군데씩 다니면서 가슴이 뛰는 곳을 고르자고 했다. 모두 같은 성당인데 느낌이 다를까 싶었는데, 정말 다 달랐다.

차분히 쉬고 있는 성당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왕자님의 표정을 살폈다. 그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성당을 둘러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 순수해 보였다.

그렇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여긴 거 같아!”


 왕자님의 표정이 환해졌다. 딱히 기대를 안 했던 곳인데. 성당 안으로 들어간 순간 대리석으로 된 시원한 공기와, 밝은 나무의 색깔이 눈을 밝혔다.

그리고 높게 틔여있는 천장을 본 순간 심장이 뛰었다.


‘여기도 좋겠다…’


 2024/02/17 토요일. 우리가 선택한 성당의 하반기 혼배미사 추첨이 있는 날. 강의실 한 방에 열몇 부부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대화를 하더라도 소곤소곤, 조용한 분위기가 강의실의 공기를 압도했다. 모두가 중요한 날을 잡아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숨을 뱉고 있었기에

그 누구 하나 큰 소리 내지 않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들을 했다.

 혼배미사(혼인미사)는 금요일 1번, 토요일 2번으로, 제비 뽑기를 통해 순서를 정했다. 우리의 순서는 2번, 1번이 날을 고르고 있을 때 우리는 빠른 회의를 했다.

날짜는 9월에 가족들 생일이랑 명절이 있을 테니 우리가 만난 10/1일에서 월과 달에 하나씩 더한 11/2일 토요일에 의미 있게 하자고.

그리하여 우리의 결혼식 날짜는 성당과 우리의 기념일을 조율한 2024년 11월 2일로 정했다.


 성당에서 결혼을 하면 좋은 점은 사회자&주례&축가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혼인미사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신부님이 주례를 해주시는 격이고, 성가대가 축가를 해주는 격이다. 그리고 식장을 꾸미거나 스냅&DVD 업체도

성당들은 1-2개 업체로만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크지 않다. 결혼식에 큰 힘을 주고 싶지 않은 우리에게 딱 맞는 선택이었다.

 대신에 천주교 신자로서 혼배미사를 보기 전에 신부님에게 혼인면담을 해야 하고,  혼인교리를 한 달 동안 착실히 들어 나가야 하는 “부부의 마음”의 치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잠들기 전 30분 동안 같이 드레스나 웨딩홀 장식, 부케를 보는 대신 혼인 교리를 들으며 서로 부부가 되는 의미와 자세,

그리고 서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며 뭔가 급하게 쫓기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결혼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앞으로의 준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수많은 결혼 체크리스트들을 하나씩 쳐내리라.

 그래서 남들 모두가 하니까, 해서 따라 하는 결혼식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만들어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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