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 일토끼를 다 잡을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착각하다는 영어로 mistake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는 뜻. 글을 잘 써서 브런치 작가가 된 줄 착각했다, 성격 좋은 줄 알았는데 오늘 지랄하는 걸 보니 착각이었구나! 샤인 머스캣을 샀다고 잔소리하는 걸 보니 우리가 중산층은 된다고 생각한 게 내 착각이었어! 사고와 인지의 오류, 흔한 말로 하면 분수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착각이다.
순진하게도 25년 전 일하는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집토끼와 일토끼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착각뿐 아니라 호언장담까지 했다. 일단 봉여사가 있었고 나만 열심히 하면 굿 마마, 직장에서 찐따는 아닐 거라 여겼다. 이런 걸 보면 내 자존감은 확실히 평균 이상은 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빵구똥똥꾸리.
프로젝트를 접수하거나 뭔가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꼭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를 돌봐주던 봉여사가 아팠다. 동료에게 하던 일을 부비부비 넘기고 집으로 질주하느냐 마음은 가시방석이 63 빌딩처럼 쌓이지만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일을 끝낸 뒤 부리나케 달려가느냐? 저 선배한테는 아쉬운 소리 하기 싫은데 어떡하지. 너희 집 아이들은 왜 그렇게 자주 아프냐라고 전처럼 말하겠지. 그러니까 어제 열날 때 해열제를 미리 먹였어야 했는데 건성건성인 내가 문제야.
나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 배 나온 사장님 아니다. 주택은행을 위해, 아니었다. 현재 일하는 센터 소장? 국가? 네버, 절대 네버였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 선택은 강력한 레이저와 뒤통수의 무수한 알밤들을 견디며 과감히 아이들 곁으로 향했다. 그게 최선이었고 몇 번의 직업 경로를 변경했지만 여전히 일하는 여성으로 살고 있으니 나는 집토끼와 일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아이들은 나를 양아치 엄마라고 부른다. 오늘 양아치 엄마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양아치 엄마 오늘 몇 시에 들어와. 그리고 얼마 전에 한데렐라가 자신을 낳고 모유수유를 할 때 음식을 가려 먹었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더니 양아치 엄마라 그런 걸 모를 줄 알았더니 알고 있었냐며 나를 신기해했다.
엄마는 우리보다 일이 우선이잖아.
아니야.....
그러니까 집토끼와 일토끼를 다 잡았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의 상실이 꽤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없어서 실내화도 자기네가 씻었다. 준비물을 안 챙겨줘서 친구 것을 빌려 썼다. 알아서 공부해야 했고 부모님 사인도 엄마가 잊어먹고 출근해버려서 자기가 대충 그려갔다. 심지어 엄마는 영화관에 나를 두고 온 적도 있지 않느냐? 그런 적은 있지... 맨날 집에서 빈틈 많은 사고뭉치고 우리보다 일, 엄마 자신이 먼저잖아.
집토끼는 깡충깡충 뛰면서 도망간 셈이군.
그래서 엄마가 너희를 사랑 안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항변했다. 그니까 그냥 평소대로 하던 대로 하라고. 착한 엄마 코스프레하지 말고. 아, 그 뜻이었어?
결론은 일토끼였어도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는 거지, 설마 이것도 착각은 아니겠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순간, 일단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당연히 집토끼를 먼저 잡아야 하고 집토끼가 얌전히 우리에 있을 때는 또 그만큼 일토끼를 잡으면 된다. 문제는 착각에 빠져 둘 다를 잘하려다 내가 먼저 번아웃이 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친구들을 천지삐까리(많이)로 보았고 나도 경험했다.
나를 잡는데 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최소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마음속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친구와 미친 듯이 수다하고, 한 가지 이상의 취미(몰두)는 가져야 한다.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를 살 수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사라고 권한다. 청소 도우미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고용해 화장실 곰팡이도 지워야 한다. 남편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불편을 감내하고도 아이를 던져놓고 도망가도 괜찮은 사람들이(친정과 시댁과 그 외 기타 인맥)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커고 나도 남편도 적응하며 각자의 역할이 제 자리를 잡게 된다. 나도 모르게 브런치를 하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완벽, 청결, 다테 일이란 단어를 당분간 삭제해야 한다. 내가 힘들 땐, 집은 좀 난장판이어도 되고 회사일은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문제없으며 사람 관계의 디테일은 조금 무시해도 된다. 힘이 드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몸짓이 필요하다. 떼 도쓰고 어리광도 부리고, 피곤해라는 카드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육아와 가사노동과 일의 균형은 장기전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못하는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사회구조와 이 망할 놈의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Only 나만 꼭 잡고 있으면 온 우주는 문제없다. 그러니 나를 잡는 것에 온 힘을 먼저 쏟을 것. 모두가 말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글쎄다.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나?
누구도 아닌 나 위한 배려를 가수 나훈아의 말처럼 천지삐까리(아무튼 많다)로 하다보면 우리는 테스 언니가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건 그의 가사노동을 책임 진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양아치우먼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