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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r 18. 2021

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건 나 자신이었다.

선별 진료소에서

"선생님, 어제 우리 병원에서 검사한 사람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5명이나 나왔어요."

  며칠 전, 선별 진료를 하러 갔더니 직원 중 한 명이 저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에이 뭐, 이제 신경도 안 써요. 누가 누군지 기억도 안 나고."


 직장을 옮기고, 작년 10월부터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건강검진과 간단한 진료에 거기다 의사들끼리 돌아가면서 하는 선별 진료까지가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선별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마다 무섭고 불안에 떨었습니다. 하루 평균 10명 정도를 보았는데,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서 가장 먼저 어제 코로나 검사를 한 환자를 확인하였습니다. 거의 대부분 음성이었고, 간혹 가다 Positive(양성)이 나오면, '헉'하고 마음을 졸이고, 어떤 환자였는지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는지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되는 건 무섭더군요. 12월이 되면서 확진자가 폭증하자 하루에도 혼자서 50명에서 많게는 120명까지 선별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일이 검사 결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담담해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의정부 시의 확진자수는 이미 1000명을 넘어갑니다. 의정부 보건소에서 자체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고, 그 외에도 병원 3곳에 선별 진료소가 있습니다. 어이없는 건 자체 선별 진료소를 일하는 세 병원 모두, 병원 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한 번씩 곤혹을 치렀습니다. 의정부뿐만이 아닙니다. 서울대, 세브란스, 아산, 삼성, 성모병원 빅 5를 포함하여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병원 치고 코로나에 안 뚫린 곳이 없습니다. 그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은
코로나와 맞선 싸우는 최일선인 선별 진료소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코로나 환자라고 생각하고 완전 무장하기 때문입니다. 병원 내 입원환자나 보호자, 직원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었지만, 선별 진료를 하면서 확진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이마도 가려주고, 볼 살도 없애주니 V 라인 완성.                나는 가리면 미남


  N 95 마스크로도 부족해 투명 페이스 실드에 D급 방호복까지 입습니다. 하얀 방호복은 이제 저에게 제2의 가운이자, 제2의 마스크인 페이스 실드에 이은 제3의 마스크입니다.  방호복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얼굴 부분, 특히 안경을 쓰다 보니 그 주위로 벌어진 틈입니다. 하지만 페이스 실드에 마스크까지 있으니, 거의 100% 차단입니다. 바람도 물도 들어오지, 나가지도 않습니다.

  코로나가 일상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표지 사진에 있는 저 주황색 천막에서 20명을 연거푸 보았습니다. 선별 진료소가 저의 제2 진료실이 되어갑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염려와 응원이 부끄럽게도, 대부분의 환자가 '혹시나', '걱정되어서', '회사에서 하라고 해서'로 오기에 검사만 처방하면 되는 경우가 전부라 그리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저 주황 텐트 안에서 가장 힘든 건, 코로나 의심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환자가 우르르 몰려왔다가, 또 한참 안 오기도 합니다. 누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했지만, <환자는 배, 의사는 항구>입니다. 의사는 막연히 앞으로 올 환자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의 싸움입니다.

 의사는 외롭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에 아무리 환자를 많이 보아도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군종 속의 고독>이 아니라 <환자 속의 고독>입니다. 환자가 안 오면, 손님 없는 식당을 혼자 지키는 사장님 마냥 처량합니다.

 선별 진료소 안은 진료실보다 두 배는 넓지만, 안은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 침침한 회색에 항상 싸늘합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천막이 펄럭거리고 뿌연 먼지가 들어옵니다. 훅하고 코로 들어오는 아스팔트와 흙냄새에 거리에 나앉은 느낌입니다. 환자가 없을 때면 영상 통화로 딸아이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지만 핸드폰을 쓸 수가 없습니다.

 20명은 잘 수 있는 텅 빈 텐트 안에 혼자입니다.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안에서는 히터 소리가 웅웅 거립니다. 저보다 더 큰 히터지만 냉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이 차가우면 마음도 차가워집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는 몸이라도 띄워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 온기를 피우기 위해 저는 방호복을 입은 채로 제자리 뛰기를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백 하나, 백 둘.

  마스크 때문에 쉽게 숨이 찹니다. 모처럼 몸을 움직여서, 온몸에 활기가 돕니다. 역시나 우울할 때 운동이 최고입니다. 그건 탈 많은 저의 장(腸)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역시 변비에는 운동이 최고입니다. 현대 직장인이 변비에 고생하는 건 몸을 안 써서 그런 겁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뿌우웅
 

 가수 비는 화려한 조명이 자신을 감싼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저는 화려한 조명 대신 따뜻한 온기가 저를 감쌉니다. 하얀 방호복이 부풀어 오르며 무언가가 엉덩이에서 등허리와 배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수 십 개의 손이 제 갈비뼈 사이사이를 파고듭니다. 10년간 같이 산 아내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섬세한 손길입니다.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부르스를 추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포근하다 못해 황홀합니다. 이제 절정을 향해 갑니다. 그녀들은 얼굴과 방호복 사이 틈을 비집고 나와 제 코와 입술에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키스를 퍼붓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따뜻한 똥내가 납니다.


 "우윀"

 그 냄새를 맡고서 "Kiss my ass."가 영어에서 욕으로 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방귀를 뀌면 화라도 내지, 이거 누구한테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온전히 그 냄새를 창조한 동시에, 맡아야 하는 건 저의 몫입니다.  


 이 경험 이후로 선별 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저에게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제 자신, 정확히 말하자면 방귀였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제 몸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닙니다.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블랙코미디이다. 웃지 않으면, 씁쓸할 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억지라도 한 번 웃어보자고 썼습니다. 코로나가 빼앗아간 웃음을 찾는 기회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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