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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ug 06. 2021

답 정해주는 의사, 답정의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C(choice)이다.

  '문제가 생겼군.'

  고등학교 친구, 정민이에게 전화가 왔다. 한 달에 한 두번씩은 무슨 일이 없어도 20년 넘게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로, 나와 친구 모두 아이가 둘씩 있는 유부남이다. 저녁 8시 50분. 아이들까지 있는 유부남에게 저녁 8시 50분은 친구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건, 친구 대신 의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친구야."

 "어, 왜, 어디 아프나?"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경상도 남자들의 대화다.)

 "어, 근데, 내가 아니고, 우리 애 유진이가 아프다. 1박 2일로 바다에 놀러 왔는데 딸이 엄지발가락이 아프다는 거야, 자세히 보니 가시 같은 게 박혀 있어서 내가 카드로 긁었는데 확실히 뭐가 더더덕 하고 걸려. 그래서 내가 뽑아보려고 했는데 안 돼 가지고."

 "얼마나 되는데?"

 "한, 0.5cm."

 미괄식보다 언제나 두괄식을 선호하는 나는 대뜸 말했다.  

 "병원 가야지."

 "응, 그래서 병원 응급실 갔지. 갔더니 의사가 바늘 심으로 이리저리 하더니 뭔가 검은 가시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소독받고 뭐 발에 이것저것 붙이고 왔지. 의사가 당분간 다 나을 때까지 물에 들어가지 말라네."

 "그렇지, 근데 뭐?"

 "과산화수소 하고, 후시딘은 챙겨 왔고."

 "그냥 후시딘 연고만 바르면 된다. 애 면역 저하 같은 거 없으면, 어지간하면 안 덧난다."

 "살을 찢고 봉합을 한 것도 아니고, 가시 박힌 거뿐인데 뭐 이리 물도 안 닿고 이렇게 해야 하나?"

  "어 원래는 물에 안 닿는 게 최선이지. 그래야 안전하지. 나도 의사라면 똑같이 말했겠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의사만 10년 넘게 하다보니 얼굴만 보고 사람을 파악하는 관상가를 넘어,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을 파악하는 독심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근데 멀리까지 놀러 왔는데 발에 가시 좀 찔렸다고 물에 안 들어갈 기가?  
니는 어차피 답을 정해놨어.
물에 들어가 놀 거야.
물에 들어가서 놀아도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 전화한 거잖아.
 

 "그렇지."

 가족과 함께할 시간에 불청객처럼 걸려온 전화가 마땅치 않아하던 아내가 대화를 듣다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내 어설픈 독심술이 웃긴 건지, 아니면 다정다감하게 서울말을 쓰던 내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투박한 경상도 어투가 웃겨서 그런 건지 10년 가까이 같은 이불을 덮고 살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간단하제? 자기 전에만 씻기고 소독하고 약만 잘 챙겨 무라. 그래 어디고?"

 "남해!"

 "재미있게 노소."


 많은 환자들이 이미 마음 속에 답을 정해 놓고 의사를 찾아 온다. "제가 어지러운데, 이석증인가요?" 부터해서 "검사 안 하고 영양제만 맞으면 안돼요?" 등 다양하다. 환자의 생각이 의학적으로 잘못되었을 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환자의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이전 글, <위험한 영양제>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몸이 힘들고 숨이 차서 그런데 영양제만 맞고 가겠다는 환자, 억지로 억지로 실랑이 끝에 설득해서 폐 사진을 찍었더니 공기가 들어가야할 폐에 물이 찬 적도 있었다. 


 데카르트가 말했다. 삶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이라고. 몸도 마찬가지다. 

이제 의사가 모든 걸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다. 결정을 하는 건 바로 당신이다. 의사는 거들뿐이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를........ 



1. 더 읽어볼 이야기: 

https://brunch.co.kr/@sssfriend/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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