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Jan 05. 2023

그냥 운이 나빠서, 암에 걸린 거에요.

운칠기삼(運七技三)

 1년 전에 <12월에는 건강검진을 받지 마세요.> 글을 썼다. 운 좋게 다음 메인에도 걸리고, 조회수도 9만 9810명을 찍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험에서 벼락치기하듯 모두 12월에 몰려왔다.



https://brunch.co.kr/@sssfriend/513


 그리고 다시 1월이 왔다. 12월에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이 결과 상담을 하러 온다. 대부분은 고혈압, 당뇨, 지방간 같은 성인병이지만, 가끔 암이 있다. 뜬금없이 암이라니. 결과를 들으러 온 사람의 눈빛이 방황한다.

 건강검진뿐이 아니다. 10년 넘게 의사로 살면서, 내가 암을 진단하기도 하고, 암을 치료하기도 하고,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를 담당하기도 했다. 뇌종양, 설암, 피부암, 폐암, 위암, 간암, 자궁경부암, 고환암, 대장암, 췌장암 등. 증상이 없이 우연히 발견된 초기부터 이미 암이 몸을 장악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까지 보았다.


 '암'에 걸렸다는 말을 '감기'에 걸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손이 벌벌 떨리고 눈앞이 컴컴해지거나 하얘진다.  


 암을 진단하든, 치료하든 암 환자가 오면 의사는 바빠진다. 암일 가능성이 얼마인지, 앞으로 어떤 추가 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 설명할 게 많다. 설명한 시간도 부족한데, 내 눈앞의 환자는 '암'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내가 하는 설명 10개 중에 하나도 기억 못 할 것이다.

 최근에는 폐암 검진을 하는데, 4a나 4b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나는 진료의뢰서와 함께 적어준다. 암 일 가능성과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을. 그래야 나중에라도 기억이 날 테니까.


 "혹시 궁금한 거 있으세요?" 진료 끝에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제 거 맞아요?"

 "진짜 암인가요?"

 "암 일 가능성이 얼마라고요?"

 부터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묻기도 하고, 아예 입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도 제대로 못 하기도 한다. 큰 충격을 받아, 나에게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가장 궁금한 질문 중 하나는

 

제가 왜 암에 걸렸을까요?

 일 것이다. 실제로 "저는 담배도 안 피우고, 가족 중에 암 환자도 없는데 제가 왜 폐암에 걸렸죠?"라고 묻는 분도 있었다.

 

 암의 원인은 무수히 많다. 담배, 유전, 술, 감염, 스트레스, 염증, 방사선 등. 하지만 암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나이다.

<2020년 사망원인통계 암발생률, 출처: 통계청>


 생명의 기초가 되는 세포는 반드시 죽는다. 산소를 옮기는 적혈구는 120일,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혈소판은 14일, 염증에 관여하는 백혈구는 1~2일이면 수명을 다한다. 우리 몸은 죽은 세포만큼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삶을 이어간다.

 문제는 우리 몸이 대략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복제하는 데 있다. 그럼 염기 서열이 틀린 세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운이 나쁘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틀린 돌연변이 세포가 나타난다. 이런 돌연변이 세포의 경우 대부분 심각한 자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죽게 된다. 또한 우리 몸의 면역계가 놓칠 수도 있지만 심각한 돌연변이의 경우 공격을 가한다. 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돌연변이 세포는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그러고도 살아남는 돌연변이 세포가 있다. 그중에서 무한 증식하려는 세포, 즉 이 등장한다.


2015년 3월 <네이처>, <셀>과 함께 3대 과학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스>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줄기세포 분열, 체세포 돌연변이, 암의 원인과 예방>이라는 논문에서 암의 원인에서 유전이 겨우 5%, 환경이 29%를 차지하고, 무려 66%가 DNA 복제 오류로 발생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복제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DNA 복제 오류 또한 높아진다.


<좌측: 유전이 중요한 원인인 암, 가운데: 유전자 복제 이상, 우측: 환경 원인>

 

 그러니까, 암에서 인간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겨우 29%에 해당하는 환경(흡연, 술, 방사선, 직업 등)뿐이고, 나머지 유전과 DNA 복제 오류를 합한 71%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냥 운이 나빠서, 암에 걸린 거에요.

  암에 걸린 모든 사람과 보호자, 그리고 한 지인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우측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도 환경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후두, 식도, 폐, 위, 간, 대장, 자궁경부 등의 장기가 이에 속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7이지만, 노력이 3에 해당한다. 3에 해당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아랫글에서 확인하면 된다. 

 https://brunch.co.kr/@sssfriend/543

 



1. 『Stem cell divisions, somatic mutations, cancer etiology, and cancer prevention』, SCIENCE, 24 Mar 2017 Vol 355, Issue 6331,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f9011


<더 읽을거리>


https://brunch.co.kr/@sssfriend/671



저의 7번째 책 <히틀러의 주치의들> 절찬리에 판매 중.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573242







 



                    

매거진의 이전글 댓글 하나가 나를 2년 간 미치게 만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