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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ug 12. 2023

의식(意識)과  병식(病識)

그리고 환자의 인권

 "아이고, 아야. 내가 진짜 죽는다."

 50대 남성이 대학병원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의사, 어딨어? 당장 어떻게 좀 해봐."

  의사였던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안내 직원이 먼저 나섰다. 

 "환자분 접수부터 하세요."

 "내가 아파 죽겠는데 당장 안 아프게 해야 될 거 아냐?"

  환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응급실에 있던 그 어떤 의료진도 나서지 않았다. 두 발로 멀쩡하게 걸어 들어왔으며, 응급실이 떠나갈 정도로 악을 쓴다는 것은 의식이 멀쩡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결국 단순 치통이었다.


  진짜 심각한 환자는 뇌출혈로 말은커녕 팔다리를 꼬집는 자극에도 눈을 뜨는 대신 팔다리만 잠시 꿈틀 하는 60대의 김영준 씨였다.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와 중환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혈압, 체온, 맥박수, 심박수 네 가지인 바이탈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의식(意識)이다. 술 취한 환자를 제외하면, 중환은 의식이 없고, 경환은 의식이 있다. 


 의식 수준(Level of Consciousness)은 좀 더 세밀하게 


①Alert 각성. 명료

②Drowsy 기면

③Stupor 혼미

④Semi- coma 반 혼수

⑤Coma 혼수

 

 다섯 단계로 나눈다. 


 영화에서 보면, 죽기 직전에 사람이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사랑해." 등의 말을 끝으로 하고, 고개를 돌리며 죽는데 극적 효과를 위한 설정일 뿐이다. 뇌출혈, 다양한 쇼크, 심각한 외상을 겪으면 의식이 저하되기에 아예 말을 못 하며, 낮에서 밤이 오는 것처럼 서서히 의식이 저하되면서 천천히 죽음을 향해 간다. '혼수상태'와 '죽음'은 호흡과 심장 박동 여부를 통해 결정하기에 의사가 아니면 감별하기도 쉽지 않다. 


 정신과는 다르다. 약물 중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식이 있다. 정신과에서 중환이나 병의 심각 정도를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병식(病識)이다. 즉, 자신이 아프거나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는지 못하는지 여부이다. 자신이 아프거나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 비교적 질환이 가볍고, 또한 치료하기도 쉽다. 


 병식에 따라, 병식이 있는 경우를 Neurosis(신경증)이라고 한다. 망상이나 환각이 없으며, 현실 감각도 있고, 환자 자신이 불안, 우울, 강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다. 불안 장애, 공포증, 우울증, 외상 후스트레스 증후군 등이 이에 속한다. 자신이 힘들고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치료받으려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심한 망상이나 환각을 겪으며 병식이 없는 Psychosis(정신증)이 있다. 주위에서 들리는 환청이나, 환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기에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것이 진짜로 들리고 보여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환각 등으로 인한 피해망상이나 관계 망상(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한다, 내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읽고 있다. 나를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과 그로 인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폭력적인 행동이 자신에게는 일종이 정당방위이다. 조현병, 마약 중독 후 금단 증상 등이 이에 속한다. 병식이 없는 Psychosis(정신증)의 경우, 환자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식(意識)이 처진 환자는 가족 등과 함께 119를 타고 실려 오듯이, 병식(病識)이 없는 환자 또한 대부분 가족 손에 이끌리거나 이상한 말과 행동, 심지어 사건을 저지르고 난 후 신고를 받은 경찰이나 119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과에서 병식(病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병의 중증 정도뿐 아니라 치료 예후가 달라진다. 병식이 없으면, 중증이고 치료가 쉽지 않다. 


 의식(意識)이 쳐지거나 없는 중증 환자가 스스로 응급실로 찾아 와서 치료 받는 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병식(病識)이 없는 정신과 응급 중환자가 제 발로 치료해 달라고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인권을 더 두텁게, 사회안전을 더 빈틈없이 지킨다.'라는 취지로 정부는 2017년도에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했다. 가족의 동의하에 기존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결정으로 입원이 가능했지만 법개정 이후로는 서로 다른 의료기관에 속한 전문의 2명 이상의 소견이 일치해야 하는 등 요건이 강화되어 오히려 입원 치료가 더욱 어려워졌다. 당장 의식이 없는 급한 응급 중환자를 입원하여 치료하는데 의사 두 명이나, 그것도 다른 병원에 속한 의사의 소견을 구하는 경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잘못된 법 개정으로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지자, 응급중증정신질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기가 어려워졌고, 그 결과 사람이 죽어 나갔다. 단, 환자가 아니라, 이웃이. 


<모두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치료만 제대로 받았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


  이 말을 꼭 사회와 정신과 관련 법안을 결정하는 분들께 하고 싶다. 


 환자의 진정한 인권은 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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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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