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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래 Oct 24. 2022

고수는 빼주세요

팍치, 샹차이, 코리앤더, 실란트로.. 여튼 그거 

어릴 때 젤리빈은 이국적인 음식의 상징이었다. 알록달록, 음식같지않은 색깔의 강낭콩들은 멜론맛도 나고 바나나맛도 나고 딸기맛도 나서 ‘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맛이 나지?’ 생각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하나씩 입에 넣었다. 그 색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젤리빈의 즐거움. 그러다가 갈색빛이 도는 검정색 젤리빈을 만났다. 이건 초콜렛맛일까? 커피맛일까? 뭐가 되었든 좋다고 생각하며 검정색 젤리빈을 깨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 입에 물고 있던 젤리빈을 먹지도 뱉지도 못한채 쩔쩔맸다. (후에 찾아보니 이 검정색 젤리빈은 리코리스-서양 감초의 맛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지에선 인기가 많다고)

이제는 언제 입에 넣어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 그 가물가물한 기억은,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쌀국수를 먹다가 다시 마주했다. (노량진의 전설이 된 바로 그 매장이 노점이었을 때다.) 그렇게 유명하대서(!) 설레는 마음으로 쌀국수를 받아 우선 국물부터 후룹 들이켰는데 마치 검정색 젤리빈을 우려 육수를 낸 맛이었다. 면만 겨우 건져먹고 이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께서 ‘방아’를 넣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방아… 검정색 젤리빈의 실체를 알게되었고, 방아의 생김새를 기억해두기위해 똑똑히 잎사귀를 봐두었다. 지만, 종종 경상도식의 매운탕집이나 식당에 가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방아잎의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현지와 싱크로율 높은 음식을 내는 요즘엔 태국음식점이나 베트남쌀국수집에서 타이 바질이 나올 때도 종종있는데, 같은 종류의 맛과 향으로 여전히 즐기지 않는 허브다. 내게 방아잎 종류의 향과 맛을 주는 허브는 이 외에도 ‘딜’, ‘펜넬’ 등이 있다.

파인다이닝을 다니고, 요리와 식도락을 즐긴다면서 아직도 못먹는 향채가 있다는 것은 어쩐지 말하기 좀 부끄럽다. (마치 한식을 좋아하지만 장맛을 모른다고 말하긴 부끄러운 것처럼. 둘다 내 이야기입니다.) 게중에 열린 마음, 열린 태도, 다양한 경험, 해외문화에 대한 익숙함을 상징하는 듯한 채소는 바로 고수다. 한국과 일본 빼고 전 세계가 즐겨먹는다는 바로 그 고수..! 나는 고수를 맛보기 전에 먼저 듣고 읽었다. 중국여행을 갔다 온 엄마 아빠에게서 악명높은 맛과 냄새에 관해 듣고, 홍콩과 태국여행을 준비하며 가이드북에 나온 ‘썅차이’ ‘팍치’ 빼는 문장을 ‘살려주세요’처럼 외웠다. 탄산수를 주의하라는 문구가 써있던 시대라고 변명을 해본다. 똠얌꿍을 먹어본 한국사람이라면, 둥둥 떠다니는 야채가 대파인 줄 알고 한입 물었다가, 레몬그라스의 맛을 제대로 본 경험, 그래서 왠지 태국 음식이 조금 무서워진 경험을 모두 하지 않았을까?

피할 수 있는 고수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피했기 때문에 원치않는 맛을 보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늘 마음 한켠으론 궁금함이 일었다. 도대체 걸레빤 물맛이 뭘까. 그걸 먹어본걸까. 비누맛이라는 건 뭘까. 향이 좋다는 걸까? 과거 제이미 올리버의 방송에서 모든 요리에 들어갔던 코리앤더가 고수라는 것을 알고 언젠가는 꼭 저 야채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아주 먼 미래의 다짐을 했었다. (이제 보니 고수를 5개 국어로 말할 수 있다. 고수, 코리앤더, 실란트로, 팍치, 썅차이…!)

첫만남은 예기치않게 찾아왔다. 장소는 도쿄의 조엘로부숑 아틀리에. 세계적인 프렌치코스를 경험해보고는 싶지만, 너무 본격적인 건 좀 부담스러웠던 나의 첫 파인다이닝이었다. 도쿄의 조엘로부숑 아틀리에는, 세계적인 프렌치 요리사 조엘로부숑이 일본에 낸 6개 점포 중 하나로, 그중 가장 캐쥬얼한 분위기로 운영된다. 물론 나 혼자 그렇게 느낀 것일수도 있지만 내부 색감도 블랙 & 레드로 경쾌하고, 완전 오픈키친을 바라보는 바테이블에 앉았더니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와 영어로 내내 셰프와 홀 매니저들과 대화해야해 등에 땀이 났다. (물론 조엘로부숑은 1945년에 태어난 할아버지여서 그가 내게 농을 건 것은 아니고 하물며 내가 이곳을 방문한지 4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 런치 가성비가 좋다는 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정보. 몇가지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 속에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이! 하이!(네 네!) 한 덕에, 고수를 맛보게 된 상황이었다.

사실 그날의 식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모두의 처음이 그렇듯 무엇을 어떻게 기뻐하고 감탄해야하는지도 몰라 ‘우와’의 연속으로만 남아있어도 접시가 나올 때마다, ‘아니, 미슐랭 레스토랑은 이런 음식을 파는 곳이구나!’하고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허브를 사용해 맛을 내고 멋을 낸 음식을 먹어보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참신한 음식들은 아니었다. 허브로 오일을 내거나, 무스를 얼려 아이스크림처럼 내거나하는 음식들은 꽤나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쨌든 그날, 나는 고수를 아이스크림으로 처음.. 먹었고, 너무나 훌륭한 첫만남이었다. 국물요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걸레 빤 물 맛이 아니었고, 부드러운 무스 아이스크림의 형태였기 때문에 설사 비누맛이 나더라도 약간의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달까?

‘완전히 고수잖아!’와, ‘어떻게 고수가 이래?’가 동시에 터져나오는 요리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고수, 방아, 타이바질은 즐기진 않는다. 쌀국수집이나 중국요릿집에 가서 고수를 어떻게 할건지 물으면, 보통은 빼달라고 하거나 별도로 달라고 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빼달라고까지는 하지 않는다.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고, 첫만남처럼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딜과 펜넬도 너무나 즐기는 맛이 되었다.

사실 허브 외에도 파인다이닝의 문턱은 여전히 내게도 높다. 가장 문제인 것은 ‘꽃’이다. 요새는 식용꽃을 많이 써서 팬지나 제비꽃같은 얼굴을 보면 아는 꽃들이 음식 위에 올려져 나올 때가 많다. 장식 아니고 음식으로..! 친절하게 맛도 설명해주신다. 예를 들어 사랑초라고 불리우는 식물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선 옥살리아라고 소개된다. ‘위에 올라간 하트모양의 허브는 옥살리아로, 상큼한 맛을 느끼실 수 있으니 함께 곁들여드시면 됩니다.’ 여기서 나의 괴로움은, 우리집이 내가 태어날 때부터 꽃집이었다는 데에 있다. “도대체 왜 사랑초를, 먹어야되냐구요..!!!” 이게 나의 첫번째 반응이다. 고수 오일 먹는 일이 쉬울까, 사랑초 먹는 일이 쉬울까? 원래부터 음식으로 여겼던 고수오일 먹는게 더 쉽다. 내게 꽃을 먹는 일은 때로는 ‘인간들이 먹다먹다 이제 꽃까지 먹잖아..?’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다. 이제 사랑초정도는 음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식용 꽃을 먹을 때도 늘 농약이 걱정이다. 어릴때 키우던 집에서 병아리들은 모두 꽃을 먹고 죽었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입에 넣는다. 사실 여전히 어떤 맛과 향을 즐겨야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꽃에 비하면 딜이나 펜넬, 처빌같은 입에 익숙치 않았던 허브들은 향긋하다. 메뉴 설명에 딜 오일, 딜 무스가 들어가면 아묻따 시킬 정도로 친해졌다. 딜과 펜넬의 향긋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니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감았던 눈이 번쩍 뜨이는 요리가 하나 있다. 바로 회현동 피크닉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제로컴플렉스>의 디저트 메뉴다. 향기로운 허브와 달콤한 견과류조림, 계절의 맛을 살린 요거트 무스, 그 위를 하얗게 덮은 슈가파우더. 스푼으로 함께 떠 한입 먹으면 도대체 풀을 잔뜩 쌓아서 어떻게 이런 황홀한 디저트를 만들 수 있는지 경이롭다. 제발 단품으로 그 허브 아이스크림을 팔면 좋겠다는 생각만 무럭 무럭 쌓아올릴 뿐이다.

이렇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절대 안 먹는 것’이 줄어드는 것이 좋다. 여전히 인간이 먹다먹다 먹을게 없어서 꽃까지 먹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맛의 경험치를 높이는 것이 조금 자유가 늘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수가 해외경험, 열린마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식용 풀에 대한 감각과 지식이 늘어나면 그만큼 같은 요리를 더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즐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된다. 예를 들어 맨날 먹는 감자볶음밥에, 딜을 넣고, 방아를 넣고, 고수를 넣고, 파를 넣고, 깻잎을 넣으면 다섯가지의 맛으로 즐길 수 있어지니까.

‘이게 얼마짜리 밥인데’ 하는 생각은 내게 편식을 멈추게 한다. 평소엔 절대로 먹지 않을 머릿고기 편육, 닭간무스, 푸아그라(거위간)같은 것들을 이미 맛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메뉴와 재료가 생각보다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많은 프렌치레스토랑에서는 닭간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한식 레스토랑에서는 편육이 정말 자주 나온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면 안먹기를 선택하겠지만, 먹어봤는데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근거있는 당당한 편식이 될 수 있어서 또 자유롭다.

나의 경우 안 먹거나 즐기지 않던 고기를 먹어본다는 점에서 편식이 없어지는 효과가 있지만, 또 반대로 야채를 안먹는 사람들에게는 파인다이닝의 경험으로 새로운 맛을 느끼고 감탄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뭔가를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먹어야 맛있다고 소문이 날지 본격적으로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미 파인다이닝은 집념 그 자체의 요리를 만드는 곳이니까. 그래서 야채의 맛과 활용과 쓰임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되면 혹은 익숙해지면 ‘나는 고기 안먹고는 못살겠어’ 같은 말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사실 이런 생각에서 파인다이닝을 섭렵해보고싶다는, 그래서 최고의 야채요리사를 찾고 싶다는 소망같은 것이 생겨났고, 한달에 두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파인다이닝을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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