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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Sep 04. 2016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_멜버른,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하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나는 지금 너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가까이 있으나 더 가까이 있지 못함에 그리운 너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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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몇 안 되는 마지막에, 너는 다정스레 내 앞머리를 헝클곤 '너는 괜찮을 거야'라는 다정스러운 말을 건넸다. 한없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포근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가장 마지막의 커다란 포옹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너의 말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볼 것이지만 그 모든 앞선 순간들만큼이나 자주 함께할 수는 없을 것임에. 나는 스스로와 약속했었다. 두 번째의 기회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두려움 없이 사랑을 주겠노라고.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사리지 않고 나의 사랑을 말하겠노라고. 그러나 나는 역시나 바보같이. 담담한 척을 했다. 담담한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은 너와의 헤어짐이 너무도 두려웠지만 그렇게 나의 두려움으로 너까지 짓누를 수 없음에 애써 나는 담담해야만 했다. 어쩌면 너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나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지만은.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은 어쩌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을까. 어느새 너를 처음 만나던 것이 이년 전의 일이다. 너는 매사에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싫은 건 싫은 것이었고 좋은 건 좋은 것이었다. 누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네가 때로는 냉철해 보였기에 매정하게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은. 이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그저 솔직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순간들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 결국에는 더욱 매정한 것일 때가 있었다.


나는 너에게 작은 쪽지를 남겼다. 한동안 '나의 작은 가족'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적었다. 네가 사용했던 표현이었다, '나의 작은 가족.' 온전한 타국의 타향인 멜버른에서, 나는 오래 전의 인연을 빌미로 은연중에 너에게 기댔다.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어쩌면 너무나도 커다랗게 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너는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단 두 달의 시간 동안 너는 나의 작은 기둥이 되어 늘상 휘청거리는 나를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어쩌면 정작 너는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은. 아니 실은 너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말이 없이도 너는. 다정스레 나의 머리를 헝클었고 나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의 두려움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언제나 나의 모든 것들이 괜찮을 것이라 나를 응원했다. 그래서이다. 나는 지금 너의 그 따뜻한 포옹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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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 단 두 달의 시간이, 이렇게 커다랗게 자라 버려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나를 잡아 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나를 돌아가고 싶게 만든다는 사실이. 그러다가도 감사하기도 했다. 내가 이토록 애틋하게 돌아가고파 하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락하고 찬란한 순간'을 네가 나에게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 하나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너는 나와의 일요일을 기억할 거라 말했다. 잊지 않을 거라 말했다. 너와 나의 그 일요일은 너무도 완벽했다. 어딘가에 적어두고 아름답게 기억해야만 할 만큼 완벽했다. 우리는 우리들의 아침에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뒷문을 활짝 열어두고 프랭크 오션의 새 앨범을 들었다. 너와 나는 힙합 혹은 알앤비의 완전한 팬은 아니었지만 그의 새 앨범은 완벽했고 우리는 완벽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고요하고도 활동적이고 평온하고도 두려운 아침을 맞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 평온하고 행복한 순간에 있을 때이면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 끝자락에 따라붙는다. 희미하게나마. 흐드러지게나마.


그리곤 너는 어떠한 클래식 음악 공연을 함께 보러 가자고 말했다. 나에게는 아무런 계획도 없는 일요일이었다. 나는 너를 따라나섰다. 나의 첫 번째 자전거 운전이기도 했다. 멜버른에서의 나의 첫 번째 자전거 운전이기도 했다. 너를 따랐다. 앞서 가는 든든한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너를 따랐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좌회전을 할 때에 왼손을 뻗어 수신호를 하는 것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비록 나는 핸들에서 단 한 손도 뗄 수가 없었지만 바로 앞서가는 든든한 너의 강인한 왼손이 나를 대신해 쭉 뻗어 좌회전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차도 다른 자전거도 많지 않았다. 일요일의 도로는 온전한 너와 나의 것이었다. 우리는 달렸고 발을 굴렀다. 이따금은 종을 마구 울렸다. 나의 종소리는 너의 종소리보다 약간 높아 애처롭게 울렸으나 너의 낮은 종이 울릴 때마다 나의 높은 종도 뒤따라 울렸다. 묵직한 너의 종이 울릴 때마다 자그만 나의 종도 뒤이어 울렸다. 어쩌면 또 한 번의 무한한 순간 속에 있노라고 생각했다. 온 인생에서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수여도 상관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장소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완벽한 순간을 보내는. 바로 그 일요일의 나는. 무한했다.


그 날의 공연 또한 완벽했다. 우리가 달리고 달려 찾아간 공연도 완벽했다. 어찌나 완벽했느냐면 너무도 완벽해서 그 순간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만큼 완벽했다. 너 역시 완벽했다. 그리고 나 또한 완벽했다. 그 누군가는, 그 어느 순간이 가히 완벽할 수 있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 역시도 그러한 당신과 같이 엄청나게 냉소적이고 직설적이며 솔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조그마한 어색한 순간들, 자전거가 삐끗 엇나가는 순간들, 너와 내가 온전하게 통하지 않던 자그마한 순간들이 불쑥불쑥 섞여 들어 있기에 그 날의 일요일이 더욱 완벽할 수 있는 것이다. 너와 나와 그 순간들의 불완전함이, 그 온 전체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날의 일요일 전부를 완벽하고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완전함이 완전함을 만드는 법이다.


그 날의 밤 너는 내게 말했다. 너와의 오늘의 일요일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너에게 답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함께한 완벽한 음악들이 있었기에, 또한 나의 첫 번째, 그토록 애틋하고 아련하다는 '첫 번째'의 타이틀이 붙은 자전거 운행이었기에. 나는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라 답했다. 실은 '너'와 '너와의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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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 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저 더욱 가까울 수 없을 뿐이었다. 언제고 너를 만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너를 그리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그리고 있었다. 때로는 그러하다. 특히 아주 멀리 떠나온 머나먼 곳에서는 그러하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랑하는 시간이 이따금 아주 절실하게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곧 다시 만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애틋해할 것이 아니었다. 감사할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너에게,

실은 나는 괜찮지 않다. 네가 무척이나 그립다. 너에게 달려가 나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 내려두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나의 무게를 내가 온전히 짊어지는 것으로 사랑을 말하려 한다. 다만 한가지. 부디 너와 나의 완벽한 일요일을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잊지 말아달라는 말만은 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너에게 나의 사랑을 보낸다는 말도.


그럼 안녕. 금방 만나자. 잠시 뒤에 만나자.

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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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너는 여전히 그곳, 그리고 이곳에 있다. 또한 나 역시 여전히 이곳에 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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