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가 경험한 미국 유치원 이야기
미국에 와서 아이 적응에 관한 문제 중 가장 심사숙고 한 부분은 유치원 선택이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결정해야 했던 시기에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유치원 설명회는 하나도 가보지 못하고 막연하게 언젠가 미국에서 연수할 계획으로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 몇 군데 중 자리가 나는 곳에 등록했었다. 그때는 비싼 비용과 다소 보여주기 식의 교육 방식에 반신반의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서 아이의 '적응시간'이다.
미국에서 아주 살 것이 아니고 일정한 기간 안에 문화와 언어를 즐겁게 경험할 계획이라면 '시간'의 제약이 있는 법이고 그 시간 안에 아이가 빨리 적응하고 즐긴다면 그만큼 돈과 시간을 버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는데 짧게는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고 그 시간 안에 부모와 아이가 모두 힘들어하는데 이유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언어 차이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어른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데 아이들은 더 낯설고 두려움이 크고 하루 종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수업과 생활이 진행되고 말이 안 통하는 이유로 친구를 사귀는 일도 힘들어져 그야말로 유치원 생활이 고역스러워진다.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에 적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이유로 아침마다 등원 전쟁을 치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와 생김새가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 먹어본 적 없는 음식, 무엇보다 말이 잘 안통하는 낯선 곳에 혼자 던져져서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은 생각해보면 어른에게도 크게 고역스러운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영어유치원 보낼 때 등원 거부가 심해서 몇 주간은 고생을 했다. 회사를 다니며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2주만 버텨보자, 그래도 아이가 적응이 힘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하고 해봤더니 아이는 생각보다는 빨리 적응했다. 적응문제는 아이마다 정도가 달라서 우리 아이의 경우 어차피 어느 유치원을 보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5세, 6세 한 학기를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오니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도움이 됐다. 적응하는 한 달간은 소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정도여도, 친구들과 상호작용이나 선생님이 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 표현하는 횟수나 시간이 점점 늘었다. 아이가 다니는 곳은 실시간으로 교실과 놀이터의 CCTV 앱을 통해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어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만 4세 이하는 preschool, 만 4세는 Pre-k, 만 5세부터는 Kindergarten과정에 들어가는데(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생으로, 한국의 유치원에 비해 무언가를 '학습'하는 데 있어서는 이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국유치원의 교육이 나이별로 좀 더 체계적이라면 미국은 Kinder까지는 주로 보육과 놀이 위주이고, 엄마들이 2학년까지는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사실 크게 학습적인 부분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없어 보인다.
사립/공립 구분에 따라, 또 사립 스쿨 안에서도 유형에 따라 다양하고 주마다 만 4세의 경우 lottery 수익으로 무료로 운영하는 곳도 있어서 선택지는 꽤 많은 느낌이다.
유치원 생활은 크게 학습적인 부분과 생활적인 부분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일반적인 영어유치원의 경우) 보통 10명 내외의 인원을 2명의 담임(원어민+한국인 선생님)이 맡아서 운영하는데 미국에서 아이가 다니는 원에서는 15~20명 이내의 인원을 2명의 담임과 부담임이 맡아서 운영한다. 한국에서의 영어유치원은 흔히들 말하는 놀이식/학습식으로 구분되는데 한국 5~6세(미국 만 4~5세)를 대상으로 하는 학습식 영어유치원의 경우 커리큘럼이 촘촘하고 대부분 미국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교재를 사용해서 수업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내용을 아이들이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ㅠ)
예를 들면 언젠가 아이가 5세 때 mammal(포유류)에 대해서 영어로 특징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이런 '지식'들을 배워온다는 뜻이다. 놀이식 영어유치원의 경우에 교재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work sheet을 기반으로 수업하는 시간이 많다. 이런 식의 교육방식이라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부분이 많다. phonics에 집중하고 여러 가지 학습방식을 활용하지만 대부분을 tracing 같은 활동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국의 놀이식 영어유치원처럼 circle time이 많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앉혀두고 노래도 하고 책도 읽어주는 식. 그러나 이런 시간은 길지 않고 대부분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거나 바깥놀이 시간, 간식 시간, 자유롭게 그림이든 낙서든 끼적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만 4세까지 낮잠을 잔다.
매주 테마가 있고 테마에 따라 활동을 하는데 많은 것을 배워온다는 느낌보다 아이가 한 주 동안 그 테마에 대해서 떠오를 때마다 집에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모습이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 교육에 적응해야 할 입장에서 장단점이 있어 보이지만 단순히 아이는 우선 많이 노니까 좋고, 오히려 조금 심심하기도 할 정도로 부담이 없는 것 같았다. 학습적인 면보다는 생활적인 면에서 가장 모범을 보인 아이에게 Super student gift 같은 포상을 주어 칭찬해 준다던지 매주 각자의 역할(Job)을 주어 책임감을 심어준다든지, 기본적인 매너와 생활습관을 가르치는 것에 더 집중한다.
아이의 생활방식이 달라진 것에 맞춰 나도 미국에 와서 유치원에 무언가 하나 더 배워서 오기를 바라기보다는 아이가 얼마나 즐겁고 신나게 생활하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변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지내는 것이 편하기는 하다.
한국에서 아이 친구 엄마들로부터 7세(한국나이) 올라가니 아이가 해가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가 그렇게 많은지...
돌아가서 겪게 될 걱정은 그때의 나에게로 미뤄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