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2019년 10월 중순쯤이었다.
나는 매일 저녁 8시 40분이면 남편을 데리러 나가곤 했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밤이면 꽤 어둡다.
차는 많지 않지만 덤프트럭이 자주 다녀서 위험한 길이기도 했다.
그 어두운 찻길에 며칠을 내리 그 아이가 보였다.
며칠이 지나자 그 아이는 그 길에서 누군가 기다리길 포기했는지 우리 집 근처 산에서 지내는 듯했다.
(우리 집은 주변에 다른 집이 없는 외딴곳이다.)
그래서 나는 산 근처 전봇대 아래에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굳이 가까워지려 하진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그 아이가 점점 가까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흘렀다.
우리 식구들은 말없이 밥을 챙겨두고,
누렁이는 말없이 와서 먹고 갔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누렁아, 누렁아” 하고 불렀고 그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이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그 아이도 이제는 본인이 누렁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그 아이가 우리 집 처마 밑까지 들어온 거다.
그저 밥만 먹고 떠나던 아이가, 처음으로 우리 곁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식구인 듯, 아닌 듯.
목줄이 있었기에 혹시 주인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우린 억지로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모른 척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2020년 1월 4일.
갑자기 그 아이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날은 춥고 비까지 오는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누렁아, 누렁아…” 부르며 동네를 헤맸다.
혹시 아픈 건 아닐까, 차에 치어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냥 우리 집에서 못 나가게 할 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며칠 후, 나는 직장에 있었고 시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누렁이가 옆 빈집 창고에 새끼를 셋 낳아놨다”라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싶기도 했고,
버려진 몸으로 혼자 새끼를 낳고 버텼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새끼들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척에 두고도 우리는 누렁이를 찾았다.
숨어서 낳은 아이들이라 울지도 않았던 걸까.
엄청 마음이 아팠다.
그 조용한 생명을 혼자서 지켜낸 누렁이가 기특해서.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넷으로 제일 큰 개집을 주문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미 마음을 정했던 것 같다.
누렁이를 우리 가족으로 데려오겠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마음이었다.
다음 날.
개집이 도착하자마자,
시아버지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누렁이의 비밀장소로 갔다. 나는 누렁이를 불러 간식을 건넸고, 그 사이 시아버지는 새끼들을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담으셨다.
그런데 누렁이는 그 모습을 경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아이도 마음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말 식구가 되기로.
시아버지께서 누렁이의 새끼들을
우리 집 지붕 아래 새로 들인 개집으로 옮기시고,
나는 누렁이와 함께 천천히 집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셋 중 두 마리는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냈고,
한 마리는 우리 집에 남아
지 엄마랑 나란히, 참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나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된 두부도 참 특별한 인연이었지만, 길 위에 있던 아이와 가족이 되었다는 건 그보다 더 특별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두 놈 다 유기되었긴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벌써 5년이 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수의사는 누렁이 나이를 6~7살쯤으로 보았으니까, 지금은 아마 11살 아니면 12살쯤 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확실히 노쇠한 게 느껴진다.
걸음도 조금 느려졌고, 눈빛에도 시간이 묻어난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누렁이가 우리 가족으로 조금 더 오래오래 따뜻하게 머물러주기를.
그리고 제발,
더는 길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생명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렁이는 지금도 그냥, 누렁이라고 부른다.
처음처럼, 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