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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후회의 얼굴을 하고 온다

영원한 나의 강아지 두부에게

by 윤선


“강아지 주인은 강아지의 죽음까지도 잘 받아들이는 게 책임이다.”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에서 이런 의미의 대사가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언젠가 나도 그렇게 해야 할 날이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땐 그저 담담하게 동의할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별을 마주하고 나니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단순히 헤어짐을 견디는 걸 넘어,

끝내 채워지지 않는 후회까지 품어야 하는 일이었다.


두부를 떠나보내고 나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건 그날 낮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애초에 큰 병원으로 데려갔더라면, 아직 곁에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다 더 먼 과거로 가서

물리더라도 더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산책 해 줄걸

더 맛있는 걸 많이 줄걸, 더 예뻐해 줄걸.

그 순간엔 최선이었던 일들을 나는 후회로 돌렸다.




두부는 유기견이었다.

콩이보다 훨씬 늦게 만났고,

입질이 있는 아이였고, 겁이 많고 의심도 많은 아이라

서로 간의 거리는 늘 조심스러웠고,

마음을 여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떠나는 그날 까지도 두부가 완전히 마음을 열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었다.

혹시 떠나보내게 되어도,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많이 안아보지 못했고,

충분히 가까워지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별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었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나, 스킨십의 횟수 같은 걸로

사랑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두부가 떠난 그날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두부를, 콩이를 사랑한 것처럼

깊고 똑같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마지막 순간, 두부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평소처럼 거칠게 물지도 않고, 겁먹지도 않고

조용히, 완전히 안겨 있었다.


그 짧은 안김이

내가 두부에게 받았던 가장 다정한 인사였다.

서툴러도 투박했어도 기다렸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닿았다는 걸,

그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책임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은, 아마 이런 걸 의미했을 것이다.

남은 사람이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

후회까지도 껴안으며 살아가는 일.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렇게 두부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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