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짱구가 부러운 번역가 엄마의 한숨 섞인 한마디.
'영어'라는 말만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영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안 해도 되겠지 했건만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애증의 관계'라 일단 정의해 두자.
예전에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처음엔 유승호 배우의 팬이라 관심 있게 봤고 점점 드라마 내용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내용은 간단하다. 삼류 고등학교의 오합지졸 학생들을 모아서 서울대를 보내겠다고 특별반을 만들어 '훈련'을 시키고 서울대를 보내진 못했지만 결국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오래전 드라마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직도 생생한 그리고 격하게 공감하는 장면이 있다.
영어를 잘하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모두들 답을 하지 못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확히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의미 전달만 한다.)
왜 수영이나 축구는 조금만 할 줄 알아도 잘한다고 하면서 영어는 그 보다 더 많이 알아도 못한다고 생각하냐?
그렇다. 우린 적어도 12년을 영어공부에 매진했건만, 죽어라 공부해서 토익점수가 900점이 넘었건만 영어 잘하냐는 물음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토익 만점자가 외국인과 대화를 못하거나 우리가 배우는 영어가 '진짜 영어'가 아니라는 내용의 방송을 많이 접하셨으리라. 그런 분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다. 내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할 때 선생님과 내 발음이 멋지지(?) 않아서 한국에 돌아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걱정이라는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이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넌 네이티브(native)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똑같은 발음을 원하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네가 말하는 것을 명확하게(clear) 이해할 수 있다. 너의 발음(pronunciation)은 정확하다. 그럼 되는 거다.
캐나다에 있을 때 우리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는 게 있다. 유치원에 TESOL 실습을 나갔던 친구들이 '유치원애들이 우리보다 더 영어를 잘해.' 그렇게 좌절감으로 방황할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한마디였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엄마가 나를 데리고 노량진에 있는 유명 학원에 데리고 가 영어와 수학 수업을 등록시켜주셨다. 그리고 교재도 사 주셨는데 그게 바로 "수학의 정석"과 "성문 종합 영어" 고등학생들의 바이블(Bible)이라 일컬어졌던 책이라 아마 책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실소 반 한숨 반인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니는 학원이고 또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열심히 공부해야지 마음먹고 시작했건만 난 처음 나오는 "명사"편에서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형광펜이랑 온갖 예쁜 색깔의 볼펜으로 밑줄도 치고 포스트잍을 붙여가며 메모도 했건만 책장을 넘겨 동사 쪽으로 가면 새책처럼 깨끗하다. 나중에 성문 기본 영어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땐 이미 내가 고3이 되었을 때라 더는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짱구에게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년에 초등학교를 가야 하지만 지금까지도 '아직은 놀자'하고 있다. 물론 그냥 무작정 놀리는 건 아니다. 짱구가 4살 때 지인이 영어유치원 4살 반이 개설되었다며 한번 가보자고 귀띔을 해 주신다. 솔깃하지만 관심 없는 척 위치만 확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짱구를 데리고 그 영어유치원에 데리고 갔다. 멋진 원복과 교과 과정이 맘에 들었지만 입학금과 원비를 안내받고는 조용히 돌아온 기억이 있다.
예전에 1등급인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우문현답이다.
선생님! 절대로 영어 조기교육 시키지 마세요.
물론 다른 솔루션이 있었지만 굳이 여기서 밝히진 않는다. 짱구에게 적용시켜 보고 확신이 들면 그때 공개하리라. 물론 아이들이 '짱구는 태교로 수능 영어 공부하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나도 걱정은 된다. 하지만 '일단은 즐기자! 영어도 수학도 즐기는 방법부터 가르치자'이다.
몇 년을 수능 영어만 죽어라 파다가 그리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 않고 도전한 번역을 하면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힌다. 이를테면
should be readily comparable....
어느 날 짱구가 영어 DVD를 보며 노래와 율동을 따라 한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엄마 아빠의 말을 따라서 하듯 영어도 아직은 DVD에서 나오는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한다. 때론 발음이 이상한 것도 있지만 나중에 읽는 연습할 때 가르쳐주면 되지 싶어서 그냥 내버려둔다.
put on your pajamas~
그런데 pajamas의 발음이 이상하다.
pajamas [pədʒάːməz] 파자마
페르시아어 pai(다리)+jama(옷)에서 온 말. 원래 헐렁한 바지를 뜻하던 것이 유럽에서 저고리와 바지로 된 잠옷을 가리키게 됨.
짱구야! 파자마를 입는다쟎아. 그땐 '퍼자머스'라고 말하는 거야
내 설명에 짱구가 고칠 줄 알았는데 DVD를 돌려 들려주면서 짱구가 맞게 말했다는 거다. 비교해 보니 짱구 발음이 맞는 것도 같다. 설상가상으로 짱구가 나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7살 짱구는 자신이 영어를 무척이나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외국인이랑 만났을 때 'Hi'라고 인사했더니 그 외국인이 웃으며 답을 해줬고 영어 DVD에 나오는 내용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바로 이 부분이 '성문 종합 영어'로만 공부했던 나와 '영어 DVD 보면서 율동하며 노래 부르는' 짱구와의 가장 큰 차이이다. 난 아직도 영어 앞에서 좌절하고 고민할 때가 있는데 짱구는 그저 재미있다. 짱구에게 영어는 그냥 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서류를 보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나를 보며 짱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는 영어가 어려워? 짱구는 영어가 쉬운데!
그래 넌 영어가 쉬워서 좋겠다. 오늘은 네가 부럽다. 이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