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4회기 -1 | 욕구를 드러내는 게 수치감이 드는 일일 때

by 차원

※ 이 글은 심리상담을 받으며 쓴 기록입니다. 실제 상담 내용을 일부 편집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1회기 상담 <고도로 우울한 33세, 내 인생 첫 심리상담>

2회기 상담 <제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구요?>

3회기 상담 <모든 일에 의욕이 안나는 '정신 지체 운동'>






상담자 |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내담자 | 일단 최근에 늘린 약이 너무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저번에 '정신 운동 지체'라는 개념을 알게 됐잖아요. 정말로 방도 정리가 안된 상태로 오래 방치해놓고 있거든요. 막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의자에 옷가지가 있으면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하려던 걸 안 하고 마는.. 이런 수준으로 가긴 했거든요. 약이 안 맞는 건지.


내담자 | 그래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것도 못하겠고, 회사에서 아무도 없을 때 자리에서 울기까지 했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랬어요. 가만히 있을 때는 진짜 무표정으로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또 어느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나고 그랬어요. 남들이랑 있을 때는 컨트롤은 되긴 되거든요.


내담자 | 근데 어떤 특정한 생각이 나서가 아니고 그냥 갑자기 뭔가 둑이 터지듯이 그랬어요. 제가 매사에 좀 불안과 걱정이 많아서 일할 때도 어찌저찌 이런저런 일들을 모면하듯이 하는 거 같고 가면 증후군처럼 항상 좀 시간에 쫓겨서 하는 사람이지만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거든요. 막 잘하는 척하고. 그게 저 스스로는 뭔가 다 '척'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그러니까 약간 나도 속이고 있고 남도 속이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내담자 | 그냥 마음속 깊이 내가 살아온 게 있는데 과연 내가 괜찮아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커요.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라는 게 저한테도 올까 싶은. 물론 상담을 시작하면서 파악이 된 부분도 있지만 무기력이 좀 심한 것 같고 약도 안 맞아서 아예 오늘은 또 안 먹었거든요. 구역감이 너무 심하고 또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게 잘 안 보이니까 (네 그랬겠어요.) 이게 근데 관계까지도 영향을 미치니까. 가족 정도로 저를 다 아는 사람들은 상관없는데 최근에 생긴 연인이 있거든요.


상담자 | 사귀는 중인 남자분이요?


내담자 | 네. 그전에는 모든 연인들이 저를 좀 불안하게 만들었으면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상담자 | 그전 남자친구랑은 다르게 안정되게 느끼시는 거군요.


내담자 | 네. 마음이 쓰이는 대상이 생기면 제가 연락하는 속도라든지 그런 거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이긴 하거든요. 지금 만나는 사람은 되게 빨리 해 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웬만한 시간에는 다 저를 막 맞춰주고. 옛날 같았으면 이런 사람은 또 빨리 질려했었거든요. 되게 모순적이긴 한데 요즘은 안정을 느끼긴 해요. 근데 만나서나 이럴 땐 괜찮은데, 문자 연락을 할 때는 뭔가 막 이제 느낌표 하나를 덜 쓴다거나 이런 거 하나로도 뭔가 문제 있나 생각을 하다 보니. 아닌 걸 알면서도 마음은 미리 불안해져 버리는 게 있어요.


상담자 | 네 너무 힘들었겠어요. 정말 속상했겠어요. 이렇게 애를 쓰는데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고 변화될 것 같지 않고 내 모습을 들킬 것 같고 얼마나 마음이 속상하고 불안했겠어요.


상담자 |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네요. 자신을 위해서 편안하게 울어주세요.


상담자 | 너무 속상했겠어요.


상담자 | 자신이 뭔가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반응을 경험하셨잖아요. 이렇게 약도 잘 안 들어서 힘들고, 옷들을 치우지 못해서 의자에 그냥 옷이 있으면 앉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을 경험하면서 이게 드러나기가 정말 겁날 것 같아요. 내가 그런 모습이었을 때 가족들이 나를 좀 모자란 뭔가 조치가 필요한 걱정스러운 그런 사람으로 봤듯이, 내가 이런 상황이 있으면 내가 참 좋아하는 남자친구인데 그 남자친구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아서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나랑 헤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너무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이 걱정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고 마음속 깊숙이 있는 두려움의 형태로 있으니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안 싫어하는지 관찰하게 되면서 하나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네요. 아기들이 그렇죠. 지금 아기의 모습이신 것 같아요. 머리로는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불안하고 떨고 그렇게 했어요.


내담자 |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멘털이 약해서 비난을 너무 공포스럽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상담자 | 그렇죠. 그게 왜 그렇게 됐을까요?


내담자 | 잘 모르겠어요.


상담자 | 학습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어린아이가 있다가 탁 해서 물을 다 엎질렀어요. 부모님이 아이고 괜찮니? 하고 아이고 너 다치진 않았니, 놀라진 않았어 하면서 물컵이 있을 땐 조심해야 돼. 이렇게 도움을 받아왔으면 실패했을 때 위로받고 어떻게 할지 알려주니까. 실패로부터 배우잖아요. 근데 물을 엎지른 게 그렇게 큰일이 아닌데도 이거 물 엎질러서 아주 큰일 났네, 어쩌다가 엎질렀어, 얘가 조심성이 없어, 이렇게 반응하면 그 아이는 그걸 학습하거든요. 아 내가 큰일 냈구나. 물 엎지르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같은 물을 엎질러도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서 물 엎질러도 되지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이렇게 학습하는 아이가 있고 큰일 났네, 이게 학습된 아이가 있어요.


상담자 | 나의 다양한 모습들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잘 수용되지 못하고 고쳤으면 하는 모습들이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주위 사람들이 반응이 큰일 났네라고 생각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큰일 났다. 그 모습이 드러났다. 사회에서 도태될 수도 있어. 잘릴 수도 있어. 연인한테 버림받을 수도 있어. 얼마나 큰 공포예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내가 바뀌지 않고 약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알까 봐 두렵고 정말 힘들겠어요. 이럴 때 연기하는 자신이 참 못마땅스러우신가 봐요.


내담자 | 약간 뭔가 척하면 안되고, 되게 힘겹게 쟁취해야지만 가치 있다, 진짜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전 연인들을 만날 때도 옛날에는 모든 게 안 맞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진짜 사랑. 이렇게 약간 뒤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상담자 | 연인이 차원 씨한테요, 차원 씨가 연인한테요?


내담자 | 예전에는 제가 연인한테 그러는 줄만 알았거든요. 어느 순간 보니까 상대방한테도 가혹하게 그 기준을 적용시켰던 것 같아요.


상담자 | 근데 되게 가혹하다는 마음이 드시네요. 근데 제가 듣기에는 이 욕구는 이 표현이 조금 미안하고 조심스러운데 어린아이인 차원이가 부모에게 가졌던 바람일 것 같아요. 항상 나의 모습을 통제받거나 혼나거나 지시받는 게 아니고. 그러면 그 어린 차원이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고받아주는 게 사랑 아닐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사랑의 조건이 내가 어떠한 상태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진짜 사랑이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릴 적에 가졌던 상처, 결핍을 메꾸려는 소망으로 보이네요.


내담자 | 그게 되게 나쁜 모습으로 나타날 때는 상대방한테 더 나쁜 말을 한다든지 그래요. 진짜 나쁜 습관이었었긴 한데 신뢰를 보여줬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엄청 상대방을 몰아붙였던 기억이 있거든요.


상담자 |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몰아붙였다는 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내담자 | 안정된 관계로 좀 나아가서 오랫동안 지내고 그랬을 때 막 술을 마시고 이제 상대방한테 나를 뭐 진짜 좋아하는 게 맞냐 막 이런 식의. 어떻게 말하면 드라마 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했어요. 맨 정신에는 잘 못하니까.


상담자 | 맨 정신에는 이제 그게 부끄럽다는 걸 아시는 건가 봐요. 술을 마시고 하셨네요. 여기서 그러면 우리가 평가하지 말고 이해해 보려는 관점에서 한번 봐봐요. 그러니까 차원 씨가 아니고 우리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커플이 앉아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그러고 있어요. 그러면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이해를 해보려는 관점에서 '저 여자분은 그게 무엇이길래 저렇게 필요한가 맨 정신에는 못하니까 술 마시고라도 진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구나 왜 그러지' 하고 이해해 보려고 하면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내담자 | 뭔가.. 애정 결핍인가?


상담자 | 평가예요. 애정 결핍이네 이런 평가예요. 그걸 이제 이해의 관점에서 저 사람 사랑이 필요한가 봐, 사랑의 확인이 필요한가 봐. 행동은 사랑하는 것 같은데 우린 말로도 확인받고 싶잖아요. 말로 확인받고 싶은가 보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죠. 제 얘기가 어떻게 들리세요?


내담자 | 구분이 아직은 잘 안 가는 거 같아요.


상담자 | 어떤 게요?


내담자 | 사랑이 필요한 게 이제 애정이 결핍된 것 같기도 하고


상담자 | 취중 진담도 있고 취중 고백도 있잖아요. 고백 못할 때 술 마시고 막 고백하고 그러잖아요. 술의 힘을 얻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그러니까 이 관계에서 진짜 확인하고 싶은 건 너 나 사랑하니, 예요. '나 너 사랑하지' 이 얘기가 듣고 싶은 거거든요. 이 얘기가 정말 듣고 싶은 거예요. 필요하고, 확인받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동안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지 않는 부모로부터 듣고 싶었던 얘기를 듣지 못해서요. 연인은 부모와 가장 비슷한 존재거든요. 정서적 친밀감, 신체적 친밀감 측면에서요. 그렇게 부모에 대체되는 존재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거든요.


상담자 | 너무나 그립고 듣고 싶어서. 그 말이 얼마나 필요했겠어요, 그 여자분한테. 데이트하다가 여자친구가 너무 졸려하면 야 너 우리 어디 가서 자고 가자 해서 일단 재우던가, 너무 배고파하면 야 우리 데이트 일단 먹고 시작하자라고 하던가, 오늘 걷는 데이트였는데 하이힐을 신고 나오면 아 힐 신고 나왔네. 오늘 걷는 데이트 포기! 카페 데이트. 이렇게 맞춰주잖아요. 그 사람의 상황과 욕구에 맞춰주는 걸 이제 사랑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 욕구가 있어요. 그 욕구를 채워달라는 거거든요.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나요. 근데 이게 창피하게 느껴져서 술을 마셔야 그게 가능했었네요. 제 얘기가 어떻게 들리세요?


상담자 | 눈물이 나시네요. 그래요, 자기에게 공감해 주면서 충분히 눈물 흘려주세요. 눈물 흘리는 자신을 혼자 두지 마시고 같이 있어주세요. 저도 옆에서 같이 있을게요.


내담자 | 그래서 막 이번 관계도 그런 식으로 망칠까 봐.


상담자 | 너무 겁났겠어요. 전에 그런 식으로 해서 관계를 좀 놓치셨어요? (네.) 내가 기대했던 건 사랑한다는 말이었는데 그 일로 이제 관계가 깨져버려서 너무 충격이었겠어요.


상담자 | 들어보니까 참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겁이 났겠어요. 그 사람을 잃을까 봐, 내가 확인도 못하겠고. 또 확인을 안 하자니 내가 확인받고 싶고 그런 마음일 것 같아요.


상담자 | 이건 채워져야겠네요.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을 마련해 볼까요 우리? 이건 참을 게 아니고 채워야 될 문제라서


내담자 |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상담자 | 술 마시고 진지 모드로 가면 좀 어려워져요. 거절이라든가 반응하지 못하는 것들을 유머를 섞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유머를 섞어서 말씀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자 | 근데 그분이 평상시에 사랑한다는 말 잘 안 했어요? 남자들이 잘 안 하긴 하는데. 여자들은 하루에 10번씩 듣고 싶은데 남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죠.


내담자 |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잘 안 했던 사람들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상담자 | 진짜 배고팠겠네요. 사랑한다는 표현은 남자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거든요. 사랑한다. 정보 전달이에요. 근데 여자분들은 사랑한다는 건 감정 전달이거든요.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사랑이 담기고 감정이 담긴 말로 채우고 싶은 거거든요. 그래서 계속 듣고 싶어 하죠. 근데 그 사람들이 채워주지 않았네요.


내담자 | 그랬던 거 같아요.


상담자 | 너무 배고프면 뭔가가 먹고 싶은 욕구가 드는건 당연하잖아요. 사랑한다는 걸 듣고 싶은데 요구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니까 술 드시고 하셨던 것 같아요.


내담자 | 네 그 직전에 만났던 사람은 술은 되게 많이 먹었다고 했었잖아요. 그분한테는 그런 것까지 아예 기대조차 못했던 것 같거든요.


상담자 | 정말 힘든 연애였겠어요.


내담자 | 네, 근데 되돌아보면 제가 그 사람을 진짜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라는 생각도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냥 사랑을 받고 싶은 느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 이런 거였나 싶은 거예요. 제가 상대방을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상담자 |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이 더 컸겠네요. 지금까지 지내시면서 좋아 저 사람 사귀어보고 싶은데 혹시 그런 경험이 그런 경험 있으세요?


내담자 | 이거를 불현듯 깨달은 게 제가 먼저 누군가를 좋아한다 해도 먼저 다가간 적은 사실 진짜 없는 것 같아요. 쟤 괜찮아 보이는데 했을 때 상대방이 저보다 적극적이었을 때 뭐라도 된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내담자 | 근데 막 그렇게 잘 맞는 것 같진 않아도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맞으면은 냅다 만나버리는 거예요. 여러 가지 사실 고려할 게 많잖아요. 특히 이 나이에는요. 근데 누군가한테 받아들여졌다는 게 너무 기뻤나 봐요.


상담자 | 네 그랬나 봐요.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 근데 이게 내가 호감이 전혀 없으면 안 그런데, 호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호감이 있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네. 정말 기뻐했을 것 같아요.


내담자 | 되게 갈증 난 사람처럼요. 제가 제일 최근에 짧게 만났던 만남들이 너무 가벼웠던 거였던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받아들임을 너무 목말라했구나 싶었어요.


상담자 | 가벼웠다는 표현도 쓰실 수는 있는데 목말랐다는 표현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가볍지 않으세요. 되게 목말라하셨어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쓸수록 마음이 좀 괜찮거든요. 가볍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래요. 네 만약에 이 얘기를 네 제가 만약에 차원 씨 참 남자를 가볍게 만나시네요. 어떤 기분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