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서 희망을 말하다.

캐나다 비씨(BC) 주 500년 만에 홍수

by 조선아 SSunalife

*위의 사진은 The Globe and Mail 11월 16자 신문에서 가져옴 https://www.theglobeandmail.com/business/article-bc-floods-will-be-canadas-most-expensive-natural-disaster-this-year/)


지난 주 며칠간 한국에 있는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비 피해가 없느냐는 걱정과 안부인사가 카톡으로 전달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비씨(BC) 주 남부 쪽에 11월 14일 15일 이틀 동안 한 달치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났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이 폭우로 남서부 쪽은 주요 도로와 철도망이 끊겨서 물류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아직도 복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 정부는 11월 17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1월 20일부터 12월 14일까지 필수 차량 (예를 들면 대중교통, 상업용 운송 차량, 기반 시설 수리 차량이나 의료 운송들)이 아닌 일반차량은 주유를 1회 30리터로 제한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폭우가 예상되어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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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살기 좋다고 손꼽히는 캐나다 비씨 주가 요새 자연 재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씨 주의 비상사태는 올해에만 세 번째다. 첫째는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고 두 번째는 지난 여름 체감 온도가 50℃에 달하는 폭염으로 인한 산불 사태였다. 그리고 500년 만의 홍수로 세 번째의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다.


최근 비상사태가 생길 때마다 목격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사재기로 마트에 물건이 바닥나는 것이다. 휴지를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고 고기와 야채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텅빈 진열대를 보면서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통해서만 보아왔던 그런 일들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구나 아니 일어나고 있구나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대에 살고 있는 내가 돈을 주고도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아무 때나 살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비행기 표만 있으면 한국을 언제든 방문할 수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그런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성장해도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전염병이나 재난으로 인한 피해와 불편함을 겪으며 거대한 자연 앞에 하염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이러한 불편함들로 인해 남의 일로만 여겼던 물류운송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자연환경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더 이상 남의 일로만 미룰 일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어제는 내 인스터그램에 올라와 있는 내용들을 보다가 캐나다 비씨주 농림부 장관이면서 빅토리아 사니치 남쪽(Saanich Souch)에서 4선을 내리하고 있는 비씨주 의원 라나 파펌(Lana Popham)이 올린 뉴스 컨퍼런스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 비디오 내용은 농림부 장관인 라나가 이번 홍수로 인한 농작물과 축산업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보고였다.


내가 라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여름 빅토리아 섬에 살고 있는 딸아이를 방문하여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하게 같이 골프를 치게 된 다른 두 사람이 라나와 라나의 남편이었다. 평소 내 직업과 관련이 있는 교육부 정책이나 누가 교육부 장관인지 등에 대해서는 익숙하였지만 농림부 장관이 누구인지는 그때까지 솔직히 몰랐다. 골프를 치며 대화하다가 라나가 내가 살고 있는 비씨 주의 농림부 장관임을 알게 되었다. 라나 남편의 빵 터지는 유머로 우리는 18홀 내내 골프보다는 웃기에 바빴다. 선거철이 가까워질 때쯤 내가 라나에게 잘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뉴스 컨퍼런스를 통해 라나는 이번 홍수가 수도 없이 많은 야채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했다. 아보츠포드(Abortsford)에 25 에이커 (1 에이커가 약 1225평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짐작할 만하다)의 농장을 가지고 있는 딜란(Dylan)과 그 형제는 최근에 샤프란 (샤프란은 이란이나 인도 등에서 재배되는 붓꽃 향신료이다. 샤프란은 비싼 허브로 알려져 있다)을 비씨주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번 홍수로 그들의 지난 5년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어갔다고 전했다. 또한 수천 마리의 가축이 죽고 수백 개의 농장이 영향을 받았으며 아직도 많은 농장들이 물에 잠겨있다고 했다. 특별히 축산업자들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라며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돕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스 컨퍼런스를 마치면서 라나는 짧은 이야기를 남겼다. 닭을 기르는 데이브 마틴(Dave Martins)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데이브 집은 홍수가 난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그 가족은 닭들도 헛간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라나가 많은 농장 주인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데이브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데이브는 라나에게 답장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데이브와 그 가족들은 급하게 가지고 나온 그 짐들 속에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있는 벽걸이가 있었단다. 데이브는 그 물건 더미들 옆을 걸으며 자기 자신에게 "농담 아니야, 데이브. 그래 작은 희망이야 (No kidding, Dave. That's my glimmer of hope)"라고 했다고 한다. 데이브와 그 가족들은 지금 희망을 느끼고 있고 우리 모두가 힘들더라도 함께 한다면 우리는 다시 재건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하며 라나는 보고를 마쳤다.

https://youtu.be/T7DVNyWagcM?t=1462

직접적인 홍수 피해가 없고 먹을거리가 냉장고와 냉동고에 더 넣을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데도 혹시나 하는 염려와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을 대비해서 물건을 쌓아두려는 사람들로 마트는 북새통을 이룬다. 코스코에서는 한 사람당 계란 두 판이상, 우유도 한 통 이상 살 수 없도록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지인들이 텅텅 빈 진열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면 아직 장을 볼 때가 아닌데도 장을 미리 더 봐 두어야 하나 하는 조급함이 생긴다. 남의 행동을 이기적이라고 꾸짖으면서도 나 역시도 내 알량한 배려와 양심으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또는 내가 불편함을 크게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속으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잃게 되었을 때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오 년 동안 밤낮없이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간 딜란 형제나 모든 것을 다 잃은 데이브 가족들이 겪고 있는 상심과 고통은 얼마나 클까? 본인의 실수나 의도가 아닌 어느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노력이 허물어지면 누구를 탓해야 할까?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가야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으로 힘을 보태야 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 주어야 희망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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