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여행

능소화 핀 집

by 별썽

개인적으론 코로나가 6개월이 넘어가던 시점에 불안감과 공포심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여행도 떠나고 싶고, 육지도 나가고 싶고, 평소엔 집에만 있는 것도 좋아했는데 괜히 더 나가고 싶어 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도 하고, 절대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발표도 있고 여러 심란한 마음들이 가득했다.


여행을 갈 수 없다는 것과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 그 두 가지가 가장 막막하고 답답했다. (다행히 제주에서는 카페 취식금지 조항은 없었다.)

능소화가 있는 풍경들이 인스타에 올라오기 시작하고, 전국 능소화 명소가 인스타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갈 수 없으니 여행이 더 간절해졌다.

남들이 도배한 능소화 명소들을 부러워하며 스마트폰 액정을 통해 눈요기를 했다. 지금은 동네에도 만만치 않게 예쁜 능소화 풍경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때는 제주에 능소화 풍경이 있다는 걸 몰랐다. 남들이 올린 능소화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그 풍경 속에 나도 있고 싶었다.

부모님 집에도 마음대로 못 가는 팬데믹 시대에 능소화를 보겠다고 비행기를 타기엔 너무 사치스러운 것.

그래서 능소화 있는 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 어설프게 나를 그려 넣었다. 내가 못 가는 여행을 그림 속 나라도 보내주고 싶었다.


경산 자인면 설총로 941

그림 속 집은 경남 경산에 있다고 했다. 오래되고 고상한 건물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라 이 풍경이 제일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에 직접 가봐야지 했는데, 작년 겨울 이 집 능소화를 누가 톱으로 잘라놓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 이런. 인류애 상실…실망감과 절망감...


오늘 이 글을 쓰려고 ‘경산 능소화’를 검색했는데, 다행히 경산시에서 30년 수령의 비슷한 나무를 찾아 심어주었다고 한다.

동경하던 풍경이 지속될 수 있을 거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