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포 사일리지
“들판에 저 마시멜로들 말야. 짚 발효시키는 통. 그거 진짜 이름 알아?
순간 은섭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를 바라보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삼 년 전에도 똑같은 질문 했는데. “
해원은 약간 당황했다.
”그랬나? 누구한테 들었던 기억은 나. 그게 너였구나. 근데 잊어버렸네. “
”곤포. 사일리지라고도 부르고. “
곤포... 해원은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게 안 외워졌구나. “
”내년 겨울에 또 물어봐. 다시 말해줄게. 잘 자라.”...
마시멜로의 진짜 이름은 곤포. 하지만 아마도 여전히 마시멜로라 부르게 될 것 같다고 해원은 생각했다.
-이도우 장편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들판에 저 마시멜로들 말야....
언젠가부터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마른 나락 대신 마시멜로가 채운다. 쌀이 아니라 마시멜로를 수확한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오래전에는 수확이 끝난 벼이삭들을 묶어서 지푸라기 채로 세워두거나, 집모양으로 쌓아뒀는데 이젠 포장해서 말아 놓는다.
삭막한 들판에 귀엽고 하얀 동그라미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게 꼭 첫사랑 재질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은섭과 해원의 대사로 마시멜로가 등장했다.
(이 소설은 후에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해원이는 은섭이의 첫사랑이다.)
나는 곤포의 이름을 건포로 알아듣고 마른 나락을 포장해서 건포인가 보다 혼자 작명에 대한 추측까지 해놓고도 곤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시멜로로 부르다
책 속 대사를 통해 이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름을 알고 있어도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게 좋고 편하다.
마시멜로가 있는 들판 풍경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땅히 그릴 풍경이 없던 차에, 뉴질랜드에 사는 조카 데이지가 논 한가운데 서있는 사진을 봤다.
분홍색 내복을 외출복 삼아 입고, 분홍색 장화를 신고, 분홍색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엄마가 보고 자란 들판을 바라보는 조카의 모습이 아리게 아름다웠다.
마시멜로 만개의 몫을 하는 조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