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도 되고 밭도 되는 외에밋들
해방 후 벌교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얼마 후 소설 아리랑을 읽었다.
소설 아리랑이 김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이 아래 대목이 나올 때 까지도 몰랐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 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고 있는 곳이었다. 눈길이 아스라해지고 숨길이 아득해지도록 넓은 그 벌판이 보기에 너무 지루하고 허허로울까 보아 조물주는 조화를 부린 것일까. 들녘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야산들을 앉혀놓고 있었다. -소설 아리랑 1권 14페이지
소설을 읽다가 김제가 나와서 반갑기도 했고, 김제평야를 부르는 옛말을 만나서 신기하기도 했다.
제주어로 하면 ‘징게맹갱 뱅듸’나 ‘징게맹갱 드르’ 쯤 되려나.
김제의 넓은 들을 저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끝없음에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는데, 저 문장을 읽고 난 후부터는 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 한쪽에서 ‘외에밋들’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방에 정리되는 단어. 외에밋들.
우리 마을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다음 모내기를 할 때까지 황량한 들판이 되는데, 죽산면이나 광활면에서는 보리를 심어 봄에도 푸른 들판을 볼 수 있다.
벼를 심을 때는 논이라고 불렀다가 보리를 심을 때는 보리‘밭’이라고 부르는 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벼대신 콩을 심는 논도 많던데, 그건 콩논일까. 콩밭일까.
논에 심는 콩은 논콩이라 부르길래 콩심은 논은 콩‘논’이라 부르나 했더니 콩심은 논도 보리밭처럼 콩‘밭’이라고 부르더라는.
그렇게 논도 되고 밭도 되는 넓은 들판.
우리 마을과는 달라 생경하고 예쁜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보리밭 풍경을 그려봤다.
나무는 한그루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보리는 한 톨 한 톨 수확하는 마음으로 그린 외에밋들 보리밭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