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고구마보다 밤고구마!

by 연우맘

<꿀고구마보다 밤고구마!>



겨울에 아빠가 농사지어 보내주신 10박스의 고구마를 다 먹었다. 딸내미 좋아한다고 밤고구마 농사를 지으신 지 몇 해가 흘렀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단 음식을 좋아하지만, 고구마만큼은 퍽퍽하고 목이 꽉 막히는 밤고구마를 선호한다. 한 번에 몇 박스씩을 가져다주시기 때문에 나도 고구마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관, 요리법 등 연구를 많이 했다.

KakaoTalk_20240426_151618952.jpg


<고구마의 성격, 나의 성격>


고구마는 참 예민하다. 나처럼 말이다. 아기 다루듯 살살 만져야 한다. 온도 변화도 싫어하기 때문에 한곳에 두면 그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내 성격도 참 까탈스러워서 일이 안 풀리거나 화나는 날이면 마음을 정리하고자 고구마를 정리했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아래쪽에 있는 녀석들과 위쪽 아이들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줘야 한다. 묵직하고 냄새를 맡아봤을 때 무향이고 겉이 단단한 고구마는 아래쪽에, 껍질이 쭈글쭈글하고 크기보다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들은 그 날 식사로 빨리빨리 해결했다. 그렇게 고구마를 정리하고 숨 고르기를 해주고 나면 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고구마를 어떻게 보관하는지 몰라 몇 수십 개를 썩혀서 버린 적이 있었다. 물론 아빠한테는 비밀로 했다. 한여름 땡볕에서 새벽마다 밭 갈아 얼마나 고생하며 지으신 고구마란 걸 알기에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



<내 인생사와 영락없이 닮은 고구마>


고구마는 슬픔과 기쁨을 같이했고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준 건강 동반자이다. 식비 조금 아끼겠다고 회사에서 저녁밥을 먹지 않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밤 9시쯤에 퇴근하면 신발만 벗어 던지고 냉장고에 보관해둔 차디찬 찐 고구마를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먹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 고구마를 목구멍에 밀어 넣고 숨 막혀 캑캑거려 죽을 때쯤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쑥 내려가게 했다. 그럼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어지간히 속을 썩여 드렸다. 밥을 안 먹겠다고 단식투쟁을 할 때도 엄마는 방문을 슬쩍 여시고는 미운 딸년이 좋아하는 고구마를 한가득 쪄서 문 옆에 놓아주셨다.


굴곡진 내 삶도 참 고구마답다. 영락없는 밤고구마다. 물 없이, 우유 없이는 넘기기 힘겨운 고구마와 같은 그런 시간이 있었다. 맛없지만은 않았다. 중간중간 넘겨주는 우유처럼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다고 물 없이도 넘어가는 달콤한 노랑물이 뚝뚝 떨어지는 꿀고구마 인생은 아니었다. 기가긴 수험생활, 처음이라 적응되지 않던 결혼생활, 정말 어렵게 낳은 딸.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거 같아 보이는데 내 인생만 고구마 상자에서 괜찮아 보이길래 골라 쪄서 껍질을 벗겨보니 아무 맛도 안 나는 물고구마, 심하면 썩은 고구마 같았다. 나 자체가 꽉 막힌 사람이라 그런 걸까? 그랬나 보다. 융통성이 없고 한번 목에 걸리면 아까워서 뱉어내지는 못하고 어떻게든 씹어 삼켜 억지로라도 넘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푸딩처럼 달콤하고 그냥 먹어도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꿀고구마 같은 딸이 부족한 엄마를 향신료처럼 보완해준다.



<고구마와 나의 활약상>


고구마는 참 활용도가 높다. 결혼생활, 육아로 힘든 시기 나를 버티게 해준 베이킹.


고구마도 좋아하지만, 빵도 참 좋아하는데 10박스씩이나 되는 아빠의 소중한 고구마를 맛있게 소진하는 방법이 고구마를 활용한 베이킹이다. 고구마를 깍둑깍둑 썰어 넣어 머핀, 파운드를 만들고, 고구마를 푹 쪄서 우유와 갈면 영양죽이 될 뿐만 아니라 그대로 얼리면 건강한 아이스크림이 된다. 밥을 할 때도 그냥 흰 쌀밥만 하지 않고 고구마를 곁들어 넣으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밥만 먹어도 맛있는 고구마밥이 된다. 이렇게 고구마처럼 이곳저곳에서 조금씩은 하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중등임용시험에 5번 넘게 도전해서 다 떨어진 장수생이었고 결혼하고 나서도 도전했지만,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포기를 선언했다. 그때부터 한번 시작한 일을 마무리 못 했다는 죄책감, 아쉬움, 서운함이 여전히 문득문득 들고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내 자식만은 꿀고구마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인생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은 한 학교에서 기간제로 교사일을 하고 있지만, 정교사가 아니라는 마음의 짐이 나를 억누른다. 다른 정교사 선생님들이 은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식하게 된다. 마치 아직도 사람들은 노랑 꿀이 뚝뚝 떨어질 거 같은 꿀고구마를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요즘 나 같은 밤고구마 파가 늘어나고 있다. 고구마 맛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다. 고성희의 진면목을 지금부터라도 발휘하고싶다. 티 좀 내고 생색 좀 내면 어떠한가? 그 동기가 안에서 시작하든 밖에서부터이든 일단 하면 내 히스토리는 달라질것이다.


잘하고 싶어서 잘하지도 못하는 기타, 요가, 지금의 글쓰기, 영어 공부도 주변 지인들에게 좀 하는 것처럼 알리고, 자랑을 그렇게 해대며 배우고 있다.


언젠가 고성희 이름 앞에 기타치고 요가하고 영어로 글도 쓸 줄 아는 타이틀이 붙겠지?



<이번에도 또 고구마를 농사지으시는 아빠에게>


아빠, 오랜만에 불러보는 아빠입니다. 저는 과연 아빠의 밤고구마만큼이라도 잘살고 있는 것일까요? 못난 딸 굶을까 봐, 다이어트 한답시고 제대로 밥 한번 가족하고 잘 먹지도 않는 미운 딸, 뭐가 이쁘다고 또 고구마, 단호박 등 제가 좋아하는 거 전화로 또 물어오시는 농부가 거의 다 되신 나의 아빠. 매해 비가 오나 땡볕이 쏟아지는 날에도 얼굴이 까매지도록 밭에서 딸내미를 위해 농사를 지으시는 아빠에게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과거에 못났던 행동들을 보상하고자 열심히 운동도 하고 직장생활도 잘 버텨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밤고구마처럼 야무지게 단단하게 잘 살아가겠습니다.



<고구마와 영원히 동고동락할 나에게>


4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지금. 내년, 내일, 몇 년 후에 어떻게 인생이 펼쳐지고 달라질지 걱정되고, 하루하루가 고되고, 드라마틱한 점은 없어도 밤고구마처럼 살고 싶다. 한겨울에 찜기에 쪄서 접시에 내어놓으면 한때의 정겨운 추억이 생각날 수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할 것이고 움직일 것이다.


지금의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럭저럭 괜찮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데


<구>석구석 손마디가 저리고, 어느 날은 꽉 막힌 인생사에 목이 메지만


<마>지막은 있으니….넘겨보자. 넘어가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 지금부터 제가 사는 곳 공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