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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08. 2024

Blue Black Busan

지금 부산은 무슨 색깔인가요?

블루가 부산의 하늘이라면 블랙은 부산의 바다다. 블루블랙은 그 사이에서 걷고 있는 나와 딸이다.

파랑과 검정이 섞인 그날 우린 동백섬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다. 맨 처음 여수여행과는 다르게 점점 여유가 생기고 내려놓음이랄까, ‘이번에 모든 걸 다 보고 오겠어!’란 무모한 도전은 안 하고 느슨하게 끈을 풀었다. 무엇보다 여긴 부산이니까, 제2의 수도이고, 대중교통 또한 잘되어 있을 테니 걱정이 크게 없었다. 그래도 꼭 가기로 한 곳은 누리마루 APEC 하우스였다. 2005년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상 정상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정상회담이 열렸던 곳. 다른 뜻은 없었다. 딸아이에게 큰 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백섬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웨스턴 조선호텔 뒤 산책로를 지나 있다. 비가 세차지는 않아도 꽤 내렸기 때문에 걸어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산책로 옆 바다는 비가 와서 경계가 모호해져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름인지 모를 자욱한 무엇인가가 우리 주변을 꽉 잡고 있었다. 신발은 다 젖고 아직 체크인을 못 해서 양어깨에 짐은 바리바리 있었지만 여기 구경만 끝내면 비가 오는 해운대에서 못한 수영을 호텔 옥상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하리란 기대감에 연우는 더욱더 APEC하우스로 열심히 걸어갔다. 가다 보니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갑자기 연우가,

최치원이 해운대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WHO 책에서 봤어.”

“응? 정말?”

“당나라 황소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최치원이 왜 싸우냐고 꾸짖는 글을 써서 황소한테 보낸 거야. 황소가 너무 잘 쓴 글에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졌대.”

“아니 왜 최치원은 오지랖이랴? 우리나라도 아닌데.” 연우가 뒷목 잡고 바다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액션을 취했다.

“아 엄마는, 최치원 그때 당나라에서 1등 장원급제했잖아. 그리고 당나라에서 일했어.”

“그래?”

나는 비가 와서 가라앉는 기분에 그래? 정말?이라는 말밖에 했지만 딸아이의 WHO책 수업을 들으면서 걸으니 힘든것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정자에서 바라본 등대/황옥공주 인어상

신라 시대의 관리 등급과 제한된 최치원의 6두품 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해 40대에 관직을 내려놓고 여기 해운대에 들러 쉬었다고 설명해줬다. 최치원이 동백섬에서 바라본 바다가 아름다워서 해(海) 운(雲) 대(臺)란 이름을 지었고  또 설명을 했다. (잘한다, 똑똑하다 하니까 입이 쉴 새가 없다)바다와 구름을 음미하며… 같은 해운대 앞에 서 있지만, 그때 당시의 바다와 우리의 바다는 다른 색깔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랑 비슷한 나이대였는데, 한 남자는 자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속상해하고, 한 여자는 이렇게 딸과 놀러 다니고 있다.

APEC 하우스는 여기저기 볼만한 방과 전시품이 많았다. 다른 곳보다 2층 회의실이 구경거리가 많았다. 각국 정상들이 앉았던 책상과 의자가 빙 둥그렇게 있었고, 마이크와 명패가 그대로 있었고 고급스러운 카펫도 그대로 보존하여 밟을 때 조심스러웠다. 이때가 노무현 대통령 때였다.

“그럼, 저기 노무현 대통령도 WHO 책에 나오지. 아는 거 말해봐.”

“다 잊어버렸어.”      

여기 건물에서 바라보는 산책로와 고층 아파트의 풍경은 이따 밤에 보게 될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밤에는 너무 이국적이어서 낯설었는데 지금 여기는 블루와 블랙이 섞인 조용함이 좋았다. 비를 이미 많이 맞아서 젖어버린 몸, 건물 밖 벤치에 한참 앉아서 밤에 못 어울릴 걸 미리 예견한 듯 조용히 최치원처럼 바다를 바라봤다.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시간에 딱 맞춰 호텔 루프탑 수영장으로 바로 날라 갔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저 멀리 해운대 해수욕장이 보인다. 호텔 옥상에 있는 수영장은 깊고 튜브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딸은 재미있게 놀지 못했다. 더군나다 살짝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2022년 8월 17일 한여름에도 우리의 입술은 블루블랙이었다. 젊은 커플들 그리고 진한게 화장한 큰 언니들의 신남에 밀려 우리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TV를 보며 잠시나마 피곤함을 달랬다.그러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고 비도 그쳤길래 이대로 쭉 호텔 안에서만 쉴 수는 없다며 우리는 마실을 슬슬 나가기로 했다.


이 주변 추천 명소가 The bay 101이라고 자주 검색되길래 가보니 채 어둠이 오기도 전에 휘황찬란하게 켜진 눈부신 조명, 그 앞에는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들. 그쪽으로 다들 시선을 둔 채 언니 오빠들이 뭐를 보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맥주와 치킨을 먹고 있었다. 정말 사람들로 버글버글했다. 정말 낯설었고 여기가 부산 맞나 싶을 정도였다.딸은 치킨 맛있겠다, 햄버거 맛있겠다, 입을 쩝쩝대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는 치킨보다 저 초고층 아파트에 시선이 꽂혔고 파란 상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간단히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를 해서 아침을 차린 후 나 혼자 나온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운대를 옆구리에 끼고 가볍게 러닝을 하는 것이다. 그 달리기는 호텔 쪽으로 이어진다. 호텔 건물밖에 놓여 있는 벤치에서 커피와 크라상을 시키고 선글라스를 머리띠 삼아 웨이브 머리칼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한다. 아침에 걸치고 왔던 가디건을 어깨에 걸쳐 소매 부분을 느슨하게 묶었지만 무심코 어깨가 살짝 보인다. 한쪽 다리는 꼬고 늘 그렇듯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막 마시려는데 옆에서 툭툭 누가 어깨를 친다.>


“엄마 나 치킨 먹고 싶다고!”

“야! 무슨 치킨이야! 엄마 치킨 싫어하는 거 몰라?”

그래도 다른 사람들 치킨 다 먹는데 우리만 그 사람들 먹는 거 구경하는 거지가 된 거 같아서 한번 메뉴판이나 볼까 하고 가서 봤더니만 가격이……. 놀랠 노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부산의 유명한 빵집을 찾아가서 마늘빵과 슈크림빵에 만족하며 물어뜯었다.


부산은 대학생 때 친구와 와보고 20년 만에 와서 굉장히 생소하고 거의 처음 온 듯한 낯선 풍경이었다. 거기에 더 내가 이방인이 된 거 같은 이유는 서울에서도 보지 못했던 부산의 야경이었다. The bay 101 주변에는 정말 목을 위로 한껏 치켜들어야 볼 수 있는 초고층 건물, 호텔과 요트들이 삥 둘러있었다. 뭔가 압도되고 위축된 기분도 들었다. 아까 낮에는 이런 기분이 없었는데 밤에는 확 돌변한 해운대였다. 상류층들만 와야 할것 같은 곳에 와서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는 곳을 빠져나와 연우와 나는 해운대 바다로 갔다. 검은 흑색의 바다가 편안히 우리를 맞아주었다. 저쪽 조선호텔 쪽은 환한 불빛이 비쳤지만 여기 바다 쪽은 그렇게 밝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서는 딸과 사진을 마음껏 찍었다. 밤이라 사진이 예쁘게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걷고 또 걸었다.

“엄마 우리 내일은 어디가?”

“몰라~ 이제 정해야지...”


호텔에 돌아와서 어디 갈까 검색을 해보니 용궁사가 유명하다고 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이 있단다. 가기 전에 소원을 서로 말해보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해운대 앞바다 제일 비싼 아파트의 제일 뷰가 좋은 층수에 사는 나의 모습이다. 딸에게 너는 소원이 뭐니라고 물으니 지금 여기 호텔 수영장에 한 번 더 가서 노는 것이란다. 참 소박하다. 엄마 소원은 검고 네 소원은 깨끗하고 투명하고 순순한 파랑이구나!

루지/ 부산 해동 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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