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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15. 2024

히말라야 오르기보다 어려운 현관문 열기

힘들었다

    

한여름에 히말라야 등반을 끝내고 한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해서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이 없다.      

히말라야는 시원하다. 아니 오히려 가슴 사이로 땀방울이 또르륵 또르륵 굴러가면서 점점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덥다. 히말라야 하면 으레 추운 곳으로 알고 있으나 같이 등반하는 일행들과 함께라면 주변 기후까지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당연히 험난하지만 도착하고 나면 그 쾌감이 짜릿하다. 여러 가지 동작을 하면서 올라가야지 그냥 쉽게 걸어 올라가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낫다. 원래 운동, 등산이란 어느 정도의 힘듦은 각오하고 하는 것이니까.


정상에서는 바로 서지 않는다. 거꾸로 서는 물구나무 자세로 만세를 부르는 기쁨은 어떤 맛일까. 아쉽게도 나는 팔에 귀여운 근육밖에 없어서 거꾸로 서는 건 무리다. 함부로 그랬다간 힘들게 꼭대기까지 와서 바로 고꾸라져 대굴대굴 내동댕이쳐질 수 있으니 포기한다. 못하면 차선책이 있고 다음에 다시 또 오르면 된다. 시작은 킬리 만 자로의 표범이었으나 히말라야의 까마귀로 마무리했다.

까마귀 자세를 그려봄


중간에는 점프도 하면서 간다. 미래를 알았다면 이 동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부분에서 일행들이 나뒹굴고 차마 못 볼 지경이었다. 엎드려서 한 발은 앞에 약간 굽히고 한 발은 뒤로 곧게 펴있는 상태에서 엉덩이와 골반을 한껏 치켜세운다. 그리고 앞에 굽힌 다리를 뻥 차올리면 뒤에 곧게 편 다리도 같이 공중으로 올린다. 다시 착지할 때는 앞에 무릎을 굽힌 다리부터 쿵 떨어지는 소리 없이 조용히 착지한다.      

소리 없이 조용히 집에 들어와 산행 후의 피로를 반신욕으로 풀려고 했는데…. 연신 초인종을 누르고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려 했으나 안에서 문고리를 걸어 1밀리도 열 수 없었다. 다급해진 내 손. 철갑문을 두드리며 다시 안에 누구 없소! 소리를 질렀다. 고요하다. 오히려 양 옆집에서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현관문을 뜯어내야 하나. 히말라야만 안 갔다 왔어도 이 철문쯤은 뽑아 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돌아버리겠다. 벨을 250번, 집 안에 있는 딸아이 이름 252번 불렀다. 손목이 바스러지도록 두들기고 1층과 꼭대기까지 아니 저 히말라야 정상까지 들리도록 문 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외쳐도 돌아오는 건 아까 산에서도 들리지 않던 내 메아리뿐. 미치겠다.


포기하고 <천국의 열쇠집>에 전화를 했다. 입장료가 비싸려나.

"안에서 문고리를 건 경우 문 뜯어내야 합니다. 30만 원이요."

젠장~~~!!! 30만 원에 천국으로 가느니 차라리 요가 매트 펴고 문 앞에서 잘란다.

 "천국 문 안 뜯겠습니다." 천당 조금 늦게 가야겠다.

다시 쾅쾅쾅쾅꽈꽝!!!


"엄마 잘 다녀왔어? 히말라야 오랜만에 다녀와서 힘들었지."

눈을 비비면 문 열어주는 딸! 너.....! 너 이 ~~~!!!

그래, 넌 피터 팬의 나라 네버랜드(에버랜드 현장학습)에서 놀이기구 타고 날아다니느라 피곤해 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꿈속에서 여전히 팅커벨과 날아다니며 후크선장 하고 싸웠니? 그 소리가 안 들리다니!

욕이 목구멍에 차올라 넘쳐서 몇 마디는 내뱉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화는 풀리지 았았다. 불똥이 야근 일하는 아이 아빠한테 튈 수도 있고 요가 매트에 튀어 불이 날 거 같았다.


이래서 히말라야는 준비 없이 올라가면 안 되겠다. 진짜 진짜 추울 때, 힘이 남아돌 때, 그리고 반드시 현관문 열쇠는 챙기고 갈 것을 명심한다.

힘든 운동 후에는 얼음 꽉꽉 채운 아메리카노지만 오늘은 현관문과 한바탕 씨름을 했기 때문에 자야 한다.

커피 생략.

현관문과의 한판승부 후 영광의 멍자국


<히말라야 빈야사: 히말라야와 같이 매우 추운 지역에서도 체온을 상승시키며 면역력을 올려줄 수 있도록 근력과 체력을 강화하는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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