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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23. 2024

서울 사람 좋겠다. 북촌 사람 더 좋겠다!

2022년 5월 6일부터 2024년 2월 29일까지 총 서울을 6번 갔다. 나의 핸드폰 사진 기록에 의하면.     

날짜순이 아닌 테마로 정리를 한다면 미술관 옆 박물관, 뮤지컬 보러 서울까지 쏘다닌 여행, 서울 역사 여행 정도로 나눠볼 수 있겠다.

가장 최근의 북촌 여행기부터 써볼까 한다. 연우가 한국사 1급 자격증을 딴 기념 선물로 숙소를 고르게 했다. 한참 내 핸드폰을 뒤적이더니만 북촌한옥마을을 찾아냈다. 어떤 광고 글에 걸려들었는지 몰라도 북촌한옥마을의 숙소를 모아 놓은 사이트였다.

버틀러리 북촌/서촌 한옥스테이 | BUTLERLEE (butler-lee.com)


다른 여행이 그렇듯 이번 여행도 숙소부터 정했다. 우린 펜션과 호텔에서만 머물러 보고 한옥에서 자본 적은 없었다. 연우가 선택한 한옥은 북촌에 있었다. 한 번도 안 가봤으니 1차 통과! 그런데 복층이었다. 복층으로 되어있는 숙소에서 몇 번 묵어봤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어떤 곳은 화장실 가러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포항의 숙소는 3층짜리 복층이었는데 1층은 주방, 2층이 침실 3층이 개인 풀장이 있어서 끙! 하며 수영하러 올라가고 끙! 하며 화장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약간 망설였지만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복층이 아니고 우리는 항상 이층집 대궐에 대한 로망이 있으니 이틀 동안 또 계단이 있는 집에서 지내보자 하고 덜컥 결재했다.


북촌에서의 1박 2일 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와 <인왕산> 등반 그리고 <요가 1일 클래스>였다. 어둠 속의 대화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로드 마스터의 안내를 받으며 추억여행도 떠나고 퀴즈도 풀어보는 체험형 전시이다. (어둠 속의 대화-제 글  목록 참고) 이렇게 대반전의 전시를 보고 우리 집 북촌 한옥으로 갔다.

한옥마을 그중에서도 우리 집 구름정은 정말 구름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찾아가는 길이 아무리 지도를 봐도  찾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제일 꼭대기 구석에 붙어있었다. 문에는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쓰여 있었고,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갈 정원과 미닫이문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아! 소박하지만 이쁘다! 


북촌마을에 구석구석 볼거리들이 많아 낮에는 활기찬 거리였지만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곳은 밤의 정취가 시골에 온 듯 아닌 듯 동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해가 그렇게 지고 나는 예약해 둔 요가 클래스에 가기 위해 혹시 몰라 여러 벌 싸 온 요가복을 이렇게 저렇게 믹스매치 하는 동안 연우는 굳이 복층으로 올라가서 넷플릭스로 7일의 왕비를 시청하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딸을 집에 혼자 남겨둔 채 요가하러 룰루랄라 갔다.


가는 길이 어둡고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정말 내가 북촌 주민인 듯 했고 평소와 다름없이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 같았다. 공주에서 서울 북촌까지 요가 수업 들으러 왔다니까 요가원 선생님은 내가 대단히 잘하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멀리서 오셨으니 오늘 더 열심히 수업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동작들을 보고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요가를 해야 해?라는 표정으로 주시하면서 계속 동작을 수정해 주셨다. 하지만 요가를 마치고 다시 구름정에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지고 신이 났다.

이렇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북촌까지 와서 요가도 하고 혼자서 밤거리를 다니는 내가 서울 사람 같았고 여행객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북촌은 부자 동네 같았다. 담벼락이 높은 집도 있었고 실제 주인이 사는 것 같은 대궐 바깥에는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경비 업체가 무전기 비슷한 걸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주시하는 듯했지만, 아무렴 어때! 오늘은 내가 북촌 주민인걸!

“엄마 왔다!” 하면서 들어가도 집에 돌아가니 딸이 공주집에는 없는 스크린 화면에 고개가 푹 빠져 돌아보지도 않고 인사를 했다.

“잘하고 왔어?”

이래서 TV는 집에 없어야 한다.


사다리를 놓고 굳이 복층으로 올라가 연우와 차 한잔 하며 잠들기 싫은 밤을 부여잡았다. 이왕 1일의 북촌 한옥 주인이 된 김에 다 누려보기로 했다. 사다리를 낑낑거리며 옮겨  옥상으로 통하는 쪽창문에 대고 얼굴부터 엉덩이까지 겨우겨우 집어넣고 빼서 올라갔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은 서울이 아닌 듯했다. 집은 굉장히 빼곡했지만 가로등 불빛과 아직 꺼지지 않은 집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등 빛이 점점이 모아져 깜깜한 밤하늘아래 모든 이 반짝였다. 나와 연우는 여기로 이사 오고 싶다를 계속 연발하며 저 집 사람들은 뭐 하나, 오! 저기에는 정원에 평상도 있어! 다른 집을 몰래몰래 엿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봐서 한눈에 들어오는 북촌이 정말 신기하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방금 연우가 본 7일의 왕비-단경왕후의 치마바위가 어디쯤 있을까나 옥상 난간에서 연우랑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끝내는 방향을 잃고 겨우 내려와 잠이 들었다.

북촌에서 바라본 산이 북악산인가 인왕산인가 확인은 끝내 못 했지만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인왕산에 가기 위해 청와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리가 꽤 되었지만, 검색을 해보니 인왕산은 동네 뒷산에 불과하단 후기가 많이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그 후 정상에 갈 때까지 난 연우의 징징거림과 산 중턱쯤에서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혼자 갔다 오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산에 올라가기보다 앵앵 거리는 푸념을 듣는 게 훨씬 힘들었다. 중전마마 모시고 산에 오르는 것 같은 어려움이었다. 여하튼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정상에 올라갔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정말 동산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는 길게 늘어선 돌담이 옆에 보였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정말 등산로도 아닌 거 같고 온통 바위와 흙투성이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둘 다 계속 궁시렁댔다.

단경왕후는 폐서인 되어 왜 하필 인왕산으로 들어갔을까. 여기를 한복 치마 질질 끌면서 갔단 말이야? 짜증이 나면서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마를 타고 올라갔다면 그것 또한 가맛꾼에게는 못할 짓이다 싶었다. 그냥 평지에서 지내시지... 우리가 잘 못 알아본 건지 이 바위가 치마바윈지 저기인지 모르는 사이 우리는 그렇게 치마를 스치고 정상에 와버렸다. 경복궁에서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붉은 치마를 널어놨다는데 우리는 정상에서 정말 경복궁이 보였다. 그곳에서 치마가 보였을런지는 의문이다.


정상에는 젊은 언니들이 정말 많았다. 나도 산을 정복해 보긴 오랜만이어서 기분만은 최고였는데 연우는 정상에 와서도 뭐가 그리 원통한지 빨리 내려가자는 눈빛만 나에게 계속 발사했다. 이렇게 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 없어서 이쁜 언니에게 우리 모녀의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는 블로그에서 보이는 정상적인 돌담길로 해서 내려왔다.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그 길도 올라가는 건 만만치 않았나 보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의 대화,

“나 요즘 요가하는데 등산보다 X 힘들어!”

“들었지! 딸! 나 힘든 운동하는 거였어."

내려오고 나니 인왕산 호랑이상이 떡하니 입구에 있었다. 왜지? 궁금증이 들어서 검색해 보니 옛날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인왕산 아래에 있는 약수터에서 빵을 까먹으며 연우와 나는 고양이 몇 마리를 보기는 했다.


인왕산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딸아이 데리고 등산을 그렇게 끝낸 우리는 또 경복궁에 갔다. 서울 여행에서 경복궁만 몇 번째 가는지 모를 정도로 이제는 발길이 알아서 가준다. 여전히 경복궁엔 한복을 곱게 입은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많았다. 인왕산 호랑이랑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써서 경복궁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지는 못했다. 궁을 떠나는 단경왕후의 심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왠지 궁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공주로 유배당하기 싫었다. 올 때마다 떠나기 너무 아쉬운 곳!

역사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서울 역사박물관에 가보자고 졸랐다. 그래 빨리 가자! 그곳 또한 좋았다. 해설사가 전시품을 설명해 주는데 말 한번 끊기지 않고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거의 1시간 가까이 할 수 있는 능력에 감탄하며 우리는 그렇게 서울 역사 여행을 마쳤다.

서울 사람 좋겠다. 북촌 사람 더 부럽다. 나도 서울 살고 싶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졌다.

그렇지만 분하지 않다. 공주에서 서울 가기는 이제 일도 아니다. 자주 갈 것이다.

진짜로 서울에 살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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