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맘 Jun 30. 2024

책에서 시작된 서울 뮤지컬 나들이

서울 사람만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오늘까지 코엑스에서 열린다고 한다. 부럽다. 쩝.

내 딸도 책을 참 좋아하고 잘 읽는다. 먹을 게 없을 때 책이라는 고급진 반찬을 같이 내어 준다. 그리고 나는 옆에서 떠먹여 주면 책 보느라 밥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입을 벌리고 턱밑으로 국물을 질질 흘리며  정신없이 읽고 먹는다.     

 

책을 참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서울로 뮤지컬 보러 다니기가 시작된 것이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있는데 서울 집 살 돈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서울 냄새 간간이 맡으러 다니고 좋았다.

원조 독서광 어린이 하면 바로 <마틸다>이고 이미 책으로 읽어본 터라 우리는 잔뜩 기대를 하고 보러 갔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볼 정도로 볼거리가 많아서 아직도 우리의 순위권에 드는 작품으로 꼽힌다. 공중그네를 타고 <When I grow up>을 부르는 장면, 책상 위로 올라가서 학생들이 부르는 <Revolting children>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들에 우리는 침도 꼴딱 못 삼키고, 눈도 한번 깜짝 못한 것 같다. 중간 휴식시간에 연우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며 이게 웬일이니 뮤지컬- 비쌀 만하다면서  화장실을 급하게 갔다 와 다음 2부를 기다렸었다.

마틸다

서울은 놀 거리도 많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아서 중간중간 시간이 붕 뜰 때 가기 좋다.

처음 가본 서울의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너무나도 큰 규모에 볼 게 너무 많아서 여기는 미리 동선을 잘 짜서 공부를 하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경천사 십층석탑>이다.

당연히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검색해 본 결과 일본에 빼앗겼다가 다시 어렵게 구해왔고, 대리석이라 비가 오면 부식이 될 우려가 있어서 미리 이 탑을 들여놓을 구상을 하고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체하고 조립해 낸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 건 나만 그런가. 이 탑만 멍 때리며 보고 반나절을 다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웅장함과 정교한 세련미에 1층에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보고, 층마다 올라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곳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 운영한다는 <리움미술관>이다.

딱 거기까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가봤는데 촌년인 내가  봐도 여긴 부자 동네였다. 미술관 밖에도 번쩍번쩍한 조형물들이 많아서  연우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려 구도를 잡다가 돌부리에 걸려 대자로 철퍼덕 넘어져 눈물을 찔끔한 추억도 있는 곳이다. Art는 모르지만, 도자기류의 전시품이 많아서 그릇 덕후인 나는 유리 가림막이 뚫릴 정도로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며 사심 가득한 관람을 했다. 저 그릇에는 어떤 디저트를 올려야 어울릴 것이냐를 상상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사에 더 관심이 있는 연우는 도슨트 디지털 가이드를 대여해서 해설과 함께 전시품을 공부했다. 여기 또한 하루 안에 다 보기엔 아까운 곳이다.       


    

리움미술관 내부와 바깥 풍경


아니, 서울을 제대로 즐기려면 제주 한 달 살기보다 더 오랜 서울 일 년 살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책으로 시작한 뮤지컬 관람이 박물관과 궁궐 등으로 이어지게 되다 보니 <뮤지컬 안중근>을 감상하게 되었다. 노래들은 어찌나 다 귀에 쏙쏙 박히는지 집에 와서도 우리는 거의 한 달 내내 보고 온 뮤지컬의 넘버들을 연신 불러대며 계속 감동을 이어나갔다. <오페라의 유령>, <레베카>는 미리 음악을 들어보고 이거다! 싶어서 보러 가게 된 공연이고 이것 또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서울에 갈 때마다 내가 미래에 입주하게 될 아파트 앞에 있는 석촌호수에 들러 여기에는 내가 과연 언제쯤 살 수 있을까를 한탄하며 겨우 엉덩이를 떼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뮤지컬 마틸다를 보러 가기 전에 러버덕이 있다길래 그때 처음 석촌호수에 가봤는데 진심으로 공주 금강보다 좋았다.  잊을 수 없다.

호수에서 달리기 하고 산책하는 서울 사람들의 여유로움, 그 뒤에 배경이 꼭 가보지 못한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책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뭘 읽는지는 몰라도 그냥 멋져 보였다.

서울은 멋짐 그 자체였다.

               

목 보호용 넥 선풍기/ 연우만큼 더 귀여웠던 러버덕

언제부터 인가 여행을 다니면서 뭘 먹으러 유명 음식점에 가질 않는다. 강릉의 흑임자 라떼나 부산의 옵스 빵집이 거의 마지막이었고 집에서 싸 온 음식이나 대충 편의점에서 사서 먹고 정말 쉴 새 없이 걸어 다니며 고속버스 막차 타임 직전까지 구경하고 또 구경했다.

궁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 복작거리며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먹는 것보다 걸어 다니며 그 지역의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는 게 좋았다.


서울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방향을 잘 몰라 “저기, 죄송하지만 길 좀….” 하면 이미 사람은 저만치 가버리고 민망한 입을 다물게 된 적도 많다. 지하철을 탈 때 어떤 경우는 사람에 떠밀려 타고 내린 적도 있다.

2022년 10월 29일은 우리가 마틸다를 본 날이었는데 보고 나오는 인파가 정말 많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도 혹시라도 뒷사람이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져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바로 그날 밤에 이태원 사고가 난 것이었다.

참으로 기묘한 날이었다.


2023년 8월 12일에는 오페라의 유령을 봤는데 그 한 달 전쯤에 서울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겁에 떨고 있던 때였다. 표를 환불하자니 수수료가 많이 나와서 우리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도 전에 유령이 되는 거 아니냐며 그날따라 배낭에 짐을 빵빵하게 넣고 앞에는 또 다른 보조 가방, 목에는 넥 선풍기 그리고 연우에게 너는 앞을 봐라, 나는 뒤를 수시로 볼 테니 하면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특히 조심하자고 출발 전부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곳곳에 경찰관이 많이 배치되어 있음에 다시 한번 서울 최고라고 연우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나중에는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 듯 가방 괜히 들고 왔다고 투덜댈 정도였다.  

   

그만큼 나와 연우는 서울이 좋아 이번 9월에도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콘서트를 예매하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반지의 제왕은 해리포터를 주말마다 씹고, 뜯고 보고 또 보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다음 책으로 쥐여준 것이다.

벽돌 책이었다. 굉장히 두꺼운데 그걸 또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여자아인데 왜 이런 싸움 책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가도 기특한 마음이 사실 더 많았다. 영화로도 봤지만, 책이 더 재밌다고 하는데 이번 공연은 영화 ost를 실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이다. 이걸 미끼 삼아 연우에게 독서를 더 하라고 강요를 하지만 스스로 책을 잘 보는 연우가 훌륭하게 잘 클 거라고 믿는다.   

   

서울에 살고 싶은 이유는 정말 많다. 대치동의 학원에 보내줄 만큼 부자도 아니고 사립학교에 보내줄 여건은 더더욱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많은 시설이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고 있고, 서울 전체가 역동적이고 생생한 박물관이다. 그리고 지금 열리고 있는 도서전 같은 행사도 참 많이 열려서 여기저기 잘 조사하고 참가하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9월 29일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인 콘서트>에 가기 전에 또 서울에 갈 구실을 만들어야겠다. 당장은 해외여행은 못 가도 서울은 자주 가보려고 한다. 공주에서 고속버스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는데 대전 가느니 서울을 갈 것이다.

서울 사람 참 좋겠다. 온갖 볼거리, 즐길 거리를 다 한 데 뭉쳐놨으니, 다 가진 부자 - 서울 사람들이다.     

이전 08화 서울 사람 좋겠다. 북촌 사람 더 좋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