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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기분 좋은 첫인상, 현관

집의 시작과 끝

현관은 오래 머물러 있는 곳이 아니고 집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통로 정도로 여겨지기 쉬워서 집을 설계할 때 항상 거실이나 방, 또는 활동이 많은 공간 위주로 사이즈를 먼저 정한 후 남는 공간을 현관으로 쓰는 등 다른 공간에 비해 소홀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관도 다른 공간처럼 집의 사이즈에 비례해 너무 넓거나 좁지 않은 적당한 여유가 필요하다. 집안의 다른 기능적 공간들에 비해 활동이 크지 않기에 기능의 복잡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사실 현관은 다목적으로 필요한 기능이 꽤 많다. 특히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 놓아야 하는 동양 문화권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신발을 어디에 어떻게 잠시 벗어서 정돈해 놓고, 지금 안 신는 신발들은 어떻게 수납해야 하는지 등, 공간이 필요한 문제로 골치 아픈 고민거리들이 생기게 된다. 


현관은 그 집의 첫인상이다. 가족들이 매일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곳, 집의 시작과 끝이며, 집 안과 밖을 구분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첫 번째 공간이며 지인들의 방문이나 택배기사님 같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노출되어야 하는, 처음 맞이하는 그 집의 첫 번째 분위기인 곳이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첫인상이 너무 화려해 보이는 건  좀 별로고 지나치게 엄격해 보이는 것도 매력이 없다. 현관은 적당히(그 어렵다는 적당히)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면 가장 좋다. 집 안의 여러 공간들 중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거실이나 침실, 주방 등이 햇빛이 잘 들고 뷰가 좋은 위치를 차지해야 하다 보니 현관은 아무래도 창문이 있고 통풍이 잘 되거나 해가 잘 들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기 마련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환기나 청결, 조명의 밝기 등에 신경을 써줘야 한다. 

집 공간에 대한 풍수지리학적 내용을 보며 신기하게도 풍수지리학이 디자인이나 철학의 본질과도 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풍수지리학에서 사람은 주변과 사는 공간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또 그렇게 받은 기운을 다시 주변으로 돌려보내며 보이지 않는 기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공간이 정갈하지 못하고 산만하고 지저분하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기운을 주게 되고 또 안 좋은 기운을 느끼는 사람들은 또다시 공간에 나쁜 기운을 전달할 수 있으며, 또 뾰족하고 튀어나온 거슬리는 물건들은 기의 흐름을 방해해서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안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관은 밖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이라 지나치게 넓어서 복이 빠져나가게 되면 안 좋고 너무 좁고 답답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굳이 풍수지리학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적으로 현관의 모습은 너무 크게 열리고 오픈되어서 거실과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모양보다는 현관을 거쳐 살짝 좁은 통로를 지나 비로소 활짝 펼쳐지며 집 안과 거실을 맞이 하는 모습이 심리적으로도 훨씬 더 안정감이 있는 좋은 구조이다. 

또 풍수지리학에서는 출입을 원활하게 해주는 통로인 현관문 앞에 거울처럼 반사하고 비추어내어 기분을 차분하지 못하게 하는 물건을 두면 들어오는 좋은 복을 반사시켜 밖으로 다시 나가게 하니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 또한 꼭 풍수학이 아니더라도 문을 열자마자 거울이 정면에 있어서 바깥의 복잡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건 상상만 해도 산만하고 정신없을 모습이니 꼭 피해 주는 게 좋다. 

현관은 항상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져야 하니 조명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전체 공간을 환하게 만드는 천장등이 있어야 하고, 천정이나 바닥 쪽으로 간접조명을 부드럽게 레이어드 해서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내면 좋겠다. 현관 앞 진입 복도 같은 이동이 잦은 구간에는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동작 감지 센서등을 달아 두면 편리하다. 또 구석진 현관 공간에는 따뜻한 기운을 가진 살아있는 그린색 식물이나 생명력 있는 그림 등으로 정체돼있는 공간에 생기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또 첫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이다. 좋은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할 때 그 당시의 향기에 대한 묘사가 많은 이유는 향기, 즉 냄새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적인 비주얼적 기억과 함께 특별한 이미지로 뇌에 각인이 되기 때문이다. 집안에 디퓨저나 향을 내는 소품을 둔다면 가장 적절한 장소는 우선 현관이다. 우리가 남의 집에 방문했을 때 바깥에서 안으로 진입하며 처음 느끼는 향기가 그 집에 대한 강한 첫인상이 될 수 있다. 향에 대한 알레르기나 거부감이 있다면,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나쁜 냄새를 없애는 일에 더 신경 쓰면 된다.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현관 수납

현관 수납은 집집마다 현관의 사이즈에 맞게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나누고 결정해야 한다. 현관 수납장이 넉넉한 워크인 클로젯이면 신발 이외에도, 집 안에 사용하는 것들이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들(공구 상자나 사다리, 실내 가드닝 도구, 각종 청소도구 등)을  포함하여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요한 것들(여행용 캐리어, 우산, 반려동물 용품과 유모차, 자전거와 골프백 등 아웃도어 스포츠 기구 들)이 수납될 수도 있으니 성격이 다른 물건들이 함께 같은 공간 내에서 사이좋게 정돈될 수 있도록 형태별로 분류를 잘하고 적절한 수납용품들도 정해 주어야 한다. 좁은 아파트 현관처럼 사이즈가 작아서 수납이 넉넉지 않다면 다른 물건들은 저장 창고로 보내고 현관에는 신발 약간 정도만 수납이 가능하게 키가 크지 않은 수납장을 두는 게 좋다. 


콘솔이나 서랍장을 현관 주변에 수납용 가구로 두고 선반 위에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형태의 거울을 놓아주면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고, 외출 전 옷 모양새를 가다듬기 좋고, 현관의 소품 수납도 편리해진다. 선반 위에 작은 바구니나 예쁜 접시를 놓아두면 외출 후 돌아와서 외투나 가방 주머니 속 작은 소지품들, 열쇠나 자외선 차단제, 선글라스 등을 대충 올려 놔둘 수 있으니 다음날 외출하기 전에 소지품을 잊고 나가서 여기저기 집안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요즘 아파트들은 현관 수납장 안에 스타일러 같은 의류 관리기가 매립되어있는 곳도 많아서 외출 후 밖에서 묻어온 오염된 외투는 현관에서 벗어서 바로 스타일러 안에서 소독해서 보관하기도 하니 다음날 급히 외출할 때 현관에서 웬만한 외출 준비는 한 번에 끝낼 수도 있다. 


또 현관에는 벤치나 스툴이 있어서 신발을 신고 벗을 때 무릎을 꿇어야 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  벤치를 두고 그 아래 부분에 신발을 수납하기 좋게 해 주거나 모양이 좋은 튼튼한 수납 바구니를 두어 자주 신는 신발 몇 켤레를 넣어서 보관할 수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현관을 깔끔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작은 스툴이나 벤치의자들은 현관에 두기 참 유용하다. 옛날 한옥집의 툇마루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벤치의자가 현관에 있으면 집에 들어오는 길에 서두르지 않고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걸터앉아 한숨을 고를 수도 있고, 외출 후 외투를 벗어서 가볍게 털기 위해 들고 들고 온 짐을 잠시 기대 놓기도 좋다. 신발장이 천정까지 높은 시스템 장일 때는 현관 의자를 사다리 삼아 높은 곳에 수납한 물건을 꺼내기도 편리하다. 

이렇게 의자나 스툴 하나만 있으면 현관에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숨 고르기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상징적 싸인이 된다. 또 벤치 옆 벽면에 예쁜 옷걸이용 훅나 작은 수납이 가능한 선반을 설치하면 아기자기한 현관 인테리어를 완성해주면서 기능적으로도 바닥에 잠시 두는 물건들이 쌓이지 않게 해 줄 수 있으니 좁은 현관 공간에 유용하다. 


현관에 접근하는 다양한 동선들  

주택 집의 경우는, 길가에서 담장과 연결된 큰 대문을 열고 마당을 따라 쭉 들어가면 비로소 집의 안쪽으로 진입하기 전 현관을 만나게 되는데 마당에 잔디나 흙바닥 위에 우드데크나 돌을 깔아서 현관까지 안내선을 만들어주는 이 진입로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의 마음가짐을 차분히 가다듬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로서 집의 품위를 높여 준다. 주택이 아닌 아파트의 경우는 이런 마당 진입로의 모습을 현관문과 중간문 사이의 복도 공간으로 대신해줄 수 있다.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홀 hall이라 불릴 법한) 복도 같은 공간을 지나 중간문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현관의 동선이 훨씬 여유로워진다. 거실과 현관의 사이를 분리해주는 중간문이나 가벽의 존재만으로도 현관의 기능과 가치가 훨씬 커질 수 있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는 동안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짧은 시간의 설렘이 기분 좋게 느껴지게 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여유로움이 생기며 집 안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좋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너무 정면으로 거실에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일은 좀 당황스럽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누구든 문이 열리자마자 무조건 강제로 얼굴을 마주 해야 하는 상황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바로 정면 방향에 거울이 있어도 안 좋고 거실이나 주방이 훤히 보여도 안 좋지만 가장 최악은 현관을 열자마자 정면에 화장실이 보이는 구조이다. 화장실은 사용 중이 아닐 때도 통풍을 위해서 완전히 닫아 놓지 않고 빼꼼하게 틈을 열어두게 되는데, 자칫 변기의 모습이 현관 방향으로 노출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기분 좋은 첫인상이 되긴 힘들 것 같다. 이렇게 무엇이든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태의 만남은 풍수학적으로도 안 좋다고 하지만 디자인 적으로도 별로 부드럽지 않으니 웬만하면 피해 주는 게 좋은데, 가능하면 방문을 열었을 때 중요한 가구들인 소파나 침대, 책상 같은 것들도 방문 정면이 아니라 대각선 방향에 자리하는 게 안정감 있고 편안한 가구 배치의 방법인 이유이다. 

또 현관은 집의 내부에 해당하는 홀의 바닥보다는 한단 낮게 두어서 공간이 심리적으로 분리가 돼 보이는 것이 좋다. 옛날 한옥 집의 대청마루와 땅바닥 간의 높이차이만큼 단 차이를 크게 낼 필요는 없더라도 우리처럼 신발을 벗어놓는 문화에서는 현관 바닥과 마루 바닥 간에 적당한 단 차이와 마감재 분리를 해주는 것이 정서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현관문 앞에 매트를 깔아주어도 심리적으로 공간이 분리됨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복잡한 도심과 좀 떨어진 주택 집들은 자동차가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보니 차고가 주차장 겸 창고처럼 쓰이는 집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주방 가까이에 차고를 출입문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관은 수납이 필요 없이 깨끗함을 유지한 채 지저분한 것들은 차고에 안 보이게 창고 수납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생긴다. 차고가 주방 가까이에서 출입할 수 있게 되면 주방에서 한꺼번에 모아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하는 분리수거 쓰레기봉투들도 잠시 보관해 놓기가 좋다. 그래서 주택 집을 지을 때는 이렇게 주차장 쪽 수납을 여유 있게 만들고 차고에서 주방으로 바로 연결된 문을 만들면 무거운 식재료들을 옮기기 수월하고 좁은 현관 수납보다 여유로운 창고 수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아파트의 경우에도 현관에서 홀을 지나 거실을 통해 주방으로 연결되게 만드는 긴 메인 통로 외에도, 현관에서 주방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통로를 하나 더 만들어주면 무거운 장바구니를 옮길 때 동선을 줄일 수 있어서 효율적이니 리모델링을 하려거나 집을 지을 계획이 있을 때 적용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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