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앨리스
나는 어린 시절, 몸이 약했던 언니와 귀한 아들인 남동생 사이에 낑겨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으니 먹을거리 차별은 물론이었고, 속옷마저 언니 것을 물려 입느라 빤스 한 장 오롯이 내 것이 없었다. 게다가 신동 소리를 들으며 늘 책을 붙잡고 살던 언니와 달리 나는 좀 맹했고 퍼뜩하면 눈물부터 쏟는 울보였다. 그러다 보니 식전 댓바람부터 계집애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어올 복도 도로 나간다며 구박도 많이 받았고, 그런 얘길 들을 때면 서러워 더 크게 엉엉 울었다. 기어이 한 대 쥐어 터질 때까지.
유일한 내 편은 아빠였는데, 아빠는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어 한 달에 두어 번 주말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나는 아빠랑 한 몸인 것처럼 내둥 매달려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때에도 제 애비 등골을 빼먹는다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할매가 틀렸다. 지금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효녀다. 풉-ㅋ
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을 비웃었다.
세게 깨물면 눈물 쏙 빠지게 아프고, 살~깨무는 시늉만 하면 간지러운 거 아닌가?
무는 사람 마음이 그때그때 다를 것인데, 어떻게 다 똑같이 아프단 말인가.
나는 이다음에 아이를 낳으면 콩 한 조각도 똑같이 나눠 먹이고, 누구 하나 서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고만고만한 두 아들의 엄마다.
큰 녀석은 어릴 때부터 편도가 약해 환절기면 열감기를 달고 살았다. 걸음도 말도 느렸고, 유치원에서는 내둥 친구들에게 얻어터졌다. 생일이 늦은 탓도 있지만, 키도 또래보다 많이 작았다. 애가 탔다. 초보 엄마인 나는 녀석에게 늘 종종거렸다. 어떻게든 한 수저라도 더 먹이려고 자는 놈도 밥때가 되면 기어이 깨워 밥을 먹였고, 좋다는 보약도 두 차례나 고아 먹였다.
녀석은 몇 년 전, 편도 수술을 하고 또 연거푸 먹은 보약 부작용인지 지금은 과체중이시다. 요즘엔 좀 그만 먹으라고 닦달한다. ㅋ
반면, 작은 녀석은 다부졌다. 키도 몸무게도 심지어 머리둘레까지 늘 상위 3% 안에 들었다. 덩치가 형보다 더 컸다.
말도 빨라 쫑알쫑알 형아를 고자질했고, 욕심도 많아 밖에서 친구들한테 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억울해서 종일 펄펄 뛰었다.
하기야 요즘은 엄마도 이기려 들고... 아니, 이미 내 머리 꼭대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비싼 과일이나 한우고기는 나도 모르게 큰 애 밥그릇에 하나 더 얹게 되었다.
덩치가 비슷하고 고만고만해 쌍둥이처럼 똑같은 옷을 입히는 걸 좋아했으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애들의 옷이나 신발이 아까워 작은 녀석 것은 덜 사게 되었다. 특히 신발은 주로 형아의 것을 물려 주었다.
학교에 보내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큰 녀석은 죄다 부족해 내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들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이것저것 찔끔거리며 시켜보기도 했고, 그러기 위해 주로 큰 아이 친구 엄마들과만 교류했다. 뭐라도 하나 더 주워들으려고.
그렇게 콩 한 조각도 똑같이 나눠줄 거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던 나는, 사실 큰 아이를 향해 더 애가 타고 마음이 쓰였다. 작은 녀석은 그냥 알아서 잘 커 주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제, 사춘기가 올락 말락 하는 큰 녀석이 되려 내게 "엄마는 왜 나만 차별해!"라며 눈을 뒤집어 깠다.
동생에게는 공부하란 잔소리를 덜 하고, 본인한테만 잔소리 꽥꽥해가며 하루 종일 징글지긋하게 공부를 시킨단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할매는 왜 나만 미워하는데!" 하던 나와 똑 닮아있었다.
녀석의 항변에 기가 찼다. 나 역시 따발총처럼 쏟아내고 싶은 억울한 심정을 꾹 눌러 참았다.
큰 녀석에게 애가 쓰여 마음을 더 쏟아부은 것이 사실이지만, 작은 녀석에게는 또 그것이 미안해 한 번 더 품어준 것 또한 사실이니까.
큰 녀석은 순하고 마음이 여려 심부름도 잘하고 엄마를 향한 마음 씀씀이도 커 내가 내심 의지하고 기댔지만,
작은 녀석은 예민하고 까칠하면서도 또 제 기분에 따라 애교도 많고 마냥 귀여워, 사실 잘못을 해도 내가 웃어넘기는 일이 더 많았다.
큰 녀석 눈에 내 행동이 똑같은 잣대로 보일 리 없었다. 인정.
열 손가락이 똑같이 아플 수 없는 이유는, 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열 손가락이 다 제각각 다르게 생긴 탓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
나를 그토록 서럽게 하던 울 할매가 보고 싶다.
미안하고 고맙다던 울 할매의 쭈글쭈글하고 까칠한 손이 오늘 아침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