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공간을 좋아하는
커피와 공간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도 좋아하지만 익숙한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공간을 찾으면 여러 번 방문해서 다른 메뉴들을 맛본다. 딱히 아끼고 싶지 않은 공간은 한 번 가본 것으로 만족한다. 애정하는 공간이 많아지는 것을 즐긴다. 그 공간의 주인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는 이야기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나를 알아보는 흔히 '단골'이라 불리는 공간이 몇 곳 있다. 친정 근처의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벽에 붙은 쿠폰을 8월까지 가져가세요. 쿠폰이 리뉴얼됩니다."라는 공지를 확인했다. 영업시간이 짧은 카페라 8월까지 못 가려나 싶어서 DM을 보내려다 아무렴, 그래도 그전에 가보자 싶어서 창을 닫았다.
오늘 친정에 갈 일이 있어서 엄마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보내두곤 바로 카페로 향했다. 시즌마다 브루잉 라인업이 바뀌는 것도 좋았고,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그대로인 공간도 여전히 좋았다. 텀블러 지참하면 1천 원 할인해 주시는 것도 여전히 좋았고. 산미 있는 원두를 마실까 하다가 인도 원두를 골랐다. 차갑게 말씀드려 놓고 앉으니 쌀쌀한 것 같길래 따뜻한 것도 맛있냐고 여쭤보니 괜찮다 하셔서 따뜻하게 달라고 말씀드렸다.
마지막 방문 때보다 벽에 쿠폰이 더 많아졌다. 동네의 사랑방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전전 회사에서는 하루 재택근무가 있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늘 노트북을 들고 오후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마셨던 곳이었다. 쿠폰이 어디 있나 찾는 나를 보시더니 "여기..!" 하시면서 바로 내 쿠폰을 가리키셨다. 그때도 지금도 나보다 내 쿠폰을 더 잘 찾아주시는 모습이 유독 다정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오셨다고 인사를 건네주시기에, 결혼을 했다고, 그래서 이사를 해서 자주 못 왔다고, 본가에 올 일이 있어야 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민 없이 바로 "어머, 결혼 축하드려요!"라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벌써 결혼한 지 두 달이나 되었지만 마음이 몽글해졌다.
아마도 내가 이래서 커피를,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자주 실증을 느끼는 내가 단골이 되는 이유가 이래 서였지. 나는 커피와 공간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커피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지.
그리곤 조용히 누군가에게 단골이라 말할 수 있는 곳들을 떠올려 봤다. 계속 그 공간이 내게 단골이라 얘기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