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퍼 Jul 27. 2024

저예요, 단골손님.

커피와 공간을 좋아하는 

커피와 공간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도 좋아하지만 익숙한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공간을 찾으면 여러 번 방문해서 다른 메뉴들을 맛본다. 딱히 아끼고 싶지 않은 공간은 한 번 가본 것으로 만족한다. 애정하는 공간이 많아지는 것을 즐긴다. 그 공간의 주인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는 이야기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나를 알아보는 흔히 '단골'이라 불리는 공간이 몇 곳 있다. 친정 근처의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벽에 붙은 쿠폰을 8월까지 가져가세요. 쿠폰이 리뉴얼됩니다."라는 공지를 확인했다. 영업시간이 짧은 카페라 8월까지 못 가려나 싶어서 DM을 보내려다 아무렴, 그래도 그전에 가보자 싶어서 창을 닫았다. 


오늘 친정에 갈 일이 있어서 엄마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보내두곤 바로 카페로 향했다. 시즌마다 브루잉 라인업이 바뀌는 것도 좋았고,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그대로인 공간도 여전히 좋았다. 텀블러 지참하면 1천 원 할인해 주시는 것도 여전히 좋았고. 산미 있는 원두를 마실까 하다가 인도 원두를 골랐다. 차갑게 말씀드려 놓고 앉으니 쌀쌀한 것 같길래 따뜻한 것도 맛있냐고 여쭤보니 괜찮다 하셔서 따뜻하게 달라고 말씀드렸다. 


마지막 방문 때보다 벽에 쿠폰이 더 많아졌다. 동네의 사랑방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전전 회사에서는 하루 재택근무가 있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늘 노트북을 들고 오후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마셨던 곳이었다. 쿠폰이 어디 있나 찾는 나를 보시더니 "여기..!" 하시면서 바로 내 쿠폰을 가리키셨다. 그때도 지금도 나보다 내 쿠폰을 더 잘 찾아주시는 모습이 유독 다정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오셨다고 인사를 건네주시기에, 결혼을 했다고, 그래서 이사를 해서 자주 못 왔다고, 본가에 올 일이 있어야 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민 없이 바로 "어머, 결혼 축하드려요!"라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벌써 결혼한 지 두 달이나 되었지만 마음이 몽글해졌다. 


아마도 내가 이래서 커피를,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자주 실증을 느끼는 내가 단골이 되는 이유가 이래 서였지. 나는 커피와 공간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커피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지. 


그리곤 조용히 누군가에게 단골이라 말할 수 있는 곳들을 떠올려 봤다. 계속 그 공간이 내게 단골이라 얘기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12화 실없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