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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야 Jun 02. 2021

호화로운 거품목욕

입욕 좋아하시나요?

어릴 때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컸었다. 집에서도 좀처럼 욕조 목욕을 하지 않았고, 엄마를 따라 공중목욕탕에 가서도 한 오분 정도 물에 있다가 나오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일본에 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는데 일본은 워낙에 온천 등의 탕에 들어가는 입욕 문화가 많기도 했고, 당시 내가 살던 원룸의 작은 화장실에 딸려있는 욕조가 귀엽기도 해서 한 번쯤 입욕을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욕조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내가 주로 기억하는 장면은 밤에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으어어~하며 노곤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목욕하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상태로 머리에 수건을 걸치고 냉장고로 달려가 캔맥주를 따서 바로 벌컥벌컥 마시며 크으~ 하며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냉장고에 종류별로 조르륵 캔맥주를 구비해 놓고 몇 번인가 따라 해 보았지만 맛은 크게 알 수 없었고 그 대신 욕조에 몸을 담그는 입욕은 꽤나 좋아졌던 것 같다.


물론 입욕이 좋아진 이유에 추운 겨울 날씨도 한몫 차지했다.


일본은 바닥 난방이 아니라 날이 쌀쌀해지면 집안이 유독 추운데, 공기로만 집안을 데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맨발로 다니는 게 익숙하던 내 발은 차가운 마룻바닥 위에서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그래서인지 따듯한 몸에 몸을 담그면 처음에는 발바닥에 얼음이 깨지는 것처럼

실같이 가느다란 느낌이 오고, 이내 온몸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필요한 용품이 바로 버블바인데, 욕조에  받을  수도꼭지 밑에 동그란 볼을 놓으면

물을 다 받을 것으로 때쯤에는 풍성한 거품이 욕조 가득 생겨나 목욕하는 내내 사라지지 않곤 했다.


일본에서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주로 홀을 서빙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단체 손님이 나가고 나면 그릇의 양과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일이 익숙지 않았던 나는 알바를 마치고 나면 온몸에 근육이 쑤셔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때마침 추운 겨울이어서 그랬던지, 쑤시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러쉬샵 안으로 홀린 듯 들어가 동그란 거품 목욕제를 하나 집어 들어 계산을 하고, 집에 돌아와 행복한 마음으로 첫 거품목욕 준비를 했었다.


사실 거품 목욕제 하나의 가격은 조금 비싸서 (아마 한 시간 시급 정도) 반으로 갈라서 써야 했지만

그 당시 일본에서 많이 쓰던 표현처럼 “호화로운(贅沢な 사치스러운)” 목욕을 해보고 싶었고, 수고한 나에게 상을 주고자 생각도 들어, 하나를 통째로 넣고 욕조에 넘치도록 생긴 거품을 즐기며 입욕을 했던 기억이 있다.


따듯한 물과 몽글하고 푹신한 거품에 잠겨 노동으로 굳었던 몸이 풀어지고, 폭닥하게 몸이 데워지며 기분 또한 말랑해졌다. 그날의 거품 목욕은 나에게 입욕의 맛을 알게 해 주었고, 그 후로는 입욕을 자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유독 추운 날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입욕은 물에 들어가는 행위에 더해 여유로운 느낌을 줘서 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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