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환상 깨기2
지난 글에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환상에 대한 글을 썼다. 역시 환상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두 번째 환상, 2. 활발한 소통과 피드백 수용에 대하여 써보고자 한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고, 어느 다른 회사를 가도 비슷하겠지만, 업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많이 했다. 업무 진행의 절반 이상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입사 당시에는 매주 한 번 진행하던 주간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회사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예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업총괄기획자분이 들어왔고 브랜드 중심의 마케팅 활동이 퍼포먼스 중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많은 변화의 시기에 있었기에 주간회의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변화의 시기에는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자와 변화하려는 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전사 주간회의는 '리더회의'로 대체되었다. 사실 회의가 상상 이상으로 길어지기도 했고 결론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몇 주가 지날수록 의미 없는 회의가 되어간다고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애자일 조직구조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여전히 나의 위로 3~4단계의 수직적인 지위가 존재했는데, 어디에서부터 정보가 왜곡되어 하향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업무지시가 내려온 사실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지시의 변화도 매우 빈번했다. 그러니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앞뒤가 안 맞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소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내적 논리도 갖지 못한 채 '일단 해야 돼'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우를 계속 발견하게 되니 업무 진행 판단을 위해 직접 회의를 듣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고, 전사회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 이후 3주가 지난 퇴사일까지도 전달이 안되어있더라.
심지어 입사 당시 '스타트업에서는 모두가 회사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던 분이 계셨는데, 퇴사와 가까운 시점에 내가 요청한 것과 정반대의 말을 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직원들은 회사일과 비전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업무를 쳐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애자일은 앞서 설명했듯이 각 업무담당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리더회의는 존재했고 제대로 된 정보 공유를 받지 못한 채 책임만 있는 반쪽짜리 애자일이 지속되었다.
먼저,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한국사회의 윤리관이 현대 민주사회의 시민의식보다 유교적 가족공동체의 인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유교는 가족 윤리를 국가와 사회의 기본 윤리로 삼았다. 아비가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그것을 고발한 자식이 더 큰 죄인이 된다. 군사부일체라 하여 지도자, 스승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윗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그 허물보다 더 큰 잘못이 되고 패륜으로 지탄을 받는다. 가족의 잘못은 감싸고 숨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 된다. 전통 농경사회의 이러한 윤리관이 아직도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필요로 한다. 잘못을 은폐하는 문화는 투명성도 효율성도 침해할 뿐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치료가 가능했던 초기 단계의 종양이 말기 암으로 진행되어 조직을 썩게 만든다.
-문유석,「개인주의자 선언」
업무가 계속되는 가운데 업무 결과 혹은 과정에 대한 부적절한 피드백을 받은 적이 많다. 실수도 했고, 신입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소 부적절한 피드백에도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만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점차 그 피드백이 업무가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지더라. 더 이상 건강한 피드백이 오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내가 이 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바로바로 사과를 잘하셨던 그분에 대해 다른 분들은 '그래도 본인 잘못은 잘 인정하지 않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과도 계속되면 습관이다. 그만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퇴사 당일까지 나의 퇴사 이슈를 다른 분들께 공유하기를 원치 않아했다. 그동안 회사에 지속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것까지는 나도 한 때 함께 일했던 조직에 대한 예의로 동의했다. 그러나 퇴사 당일, 다시 한번 나의 결심에 확신이 생겼다. 내가 나가는 것은 개인 사유고 나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당사자를 앞에 세워두고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즐겁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무례하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는 나의 퇴사 사유가 회사에 어떠한 화수분이 되어 큰 영향을 미칠지, 우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고름을 터뜨리지 못한 채 그 염증이 저절로 사라질지, 아니면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올지는 지켜볼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염증은 분명 다른 어떤 약한 곳을 뚫고 발현되기 마련이다.
이미 나의 퇴사 이전에, 앞서 말한 간극을 해결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에 휩쓸려 퇴사하신 분이 계신다. 커뮤니케이션의 팩트와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하며, 감정적인 언사로 상대방을 현혹시켜서도 안된다. 정당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양쪽이 지닌 정보가 일치해야 한다.
비대칭적이고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보여주기 식 대화, 말 그대로 '퍼포먼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소규모 스타트업일수록 누구나 다 리더가 되어야 하고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논리로 대화할 수 있다. 논리가 없는 사람을 논리로 이길 수 없듯이. 답정너는 답이 없다.
다음 글에서는 세 번째 환상, 자기 성장과 기회에 대한 환상을 깨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