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시점 에필로그를 올려봅니다. 저는 여전히 주니어 영어교육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현업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일합니다. 더 나아가 제가 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좀 강하게 말해서 유치원부터 공교육 영어를 실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현장을 벗어나서 여전히 영어가 과목의 하나가 아닐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과목이 아니라 삶의 경험들의 축적, 그리고 그 발현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오랫 기간 영어유치원 현장에 있었기에 여전히 옛 동료들을 만나고는 합니다. 저보고 영어유치원을 벗어나더니 얼굴이 폈다고들 합니다. 솔직히 그만큼 현장은 처절하고 힘들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교실이 자아실현의 장인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 그냥 끌어안고 울거나 바라봐야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를 못한다고 자신이 쓸모없는 아이라고 말하는 7살을 본다면, 자식 가진 엄마로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공부가 어려워 울면서도 엄마한테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아이, 아빠가 혼날 때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던 아이, 자신의 테스트 점수를 보고 한숨을 푹 쉬는 아이 다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가끔 그 녀석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제 매일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이 아니니 초등학교 가서는 더 재미있게 잘 살고 있으려나, 솔직히 때로는 스테이시 티쳐 하며 안겨오던 녀석들이 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도 한 살씩 나이가 먹으면서 녀석들을 업어 주는 게 힘에 부쳤습니다. 마지막 해에는 백신 부작용으로 몸이 버티지 못해 아이들을 보면 눈물만 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과 있는 것은 힘들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 어른들은 저를 포함한 모두겠지요. 이 직업을 애증 했습니다. 정말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더는 해낼 자신이 없어서 떠나야 했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자 그러더군요. 올해 어떤 원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고, 또 인터넷에서는 원이 학부모를 고소하기도 하는 사례가 있었지요. 이제 현장을 지키는 것은 한 개인에게 너무 어려운 과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교사이자 학부모였습니다. 누구보다 제 자녀들을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의 퀄리티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나태한 한국인 교사에게는 화를 내보기도 했습니다. 교사의 입장도, 학부모의 입장도 너무나 이해합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함께 근무했던 원어민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길에서 마주친 건데 저를 꼭 안아주면서 No one is happy 라면서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너무 무슨 말인지 알기에 꼭 안고 말해주었습니다.
“알아, 네 맘 알아, 내가 먼저 떠나서 미안해. 나도 정말 그곳이 모두가 행복한 곳이 되길 바랬어. 그렇게 만드는 관리자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미안해.”
그 친구를 위로하며 비겁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4년 동안,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랬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부모님들이 행복하길 바랬었습니다.
저와 만나는 선생님들이 행복하길 바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길 기도합니다.
영어유치원에 대해 더 솔직한 글은 아마 제가 현업을 벗어난 지 5년, 10년이 돼도 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이곳 또한 사람이 오는 곳이며 사람이 만드는 곳이라는 데 우리 모두가 동의하길 바라보며, 이 원고의 개정판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9월 스테이시 드림
P.S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모든 영유 교사분들께 존경함을 표하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