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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Sep 14. 2024

퇴사하면 해결될까

퇴원 후 일주일 정도는 눈치를 보며 칼퇴를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칼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냐면 9시에 출근해서 6시도 아닌 7시쯤에 퇴근하는 날이면 오늘 사정 상 먼저 나가보게 돼서 죄송하다고 메신저에 보고를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니 최소 9시는 돼야 퇴근하는 게 죄송스럽지 않은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야근이 뿌듯하기도 하고 애사심도 가졌지만, 어김없이 6시가 넘으면 신경 발작이 올라오는 탓에 나의 야근은 언제나 약을 삼키며 매일 신체의 한계를 갱신하는 꼴이었다. 


매일 퇴근길, 밤거리에서 이렇게 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는가 라는 회의에 휩싸였지만 집에 와서 쓰러져 잠이 들고 또 아침이 오면 마치 고민이 없었던 것처럼, 돈을 벌러 나갔다. 돈, 돈, 돈! 돈은 그렇게 내 인생의 1순위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를 (적어도 면접 때는) 성장, 비전 등으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돈이지 않은가. 나도 그 많은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다. 


퇴원 후 컨디션 조절을 한다고 했지만, 딱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나는 다시 편측 마비 증상에 잠식당했고 그날 울면서 퇴근을 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심장까지 마비될 것 같은 두려움은 훨씬 더 컸다. 결국 그 다음날 나는 입원을 결정할 때 보다 큰 통증에 휩싸였고, 찰나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지만 또 입원을 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신경발작이 올 때마다 그만두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었지만, 죽음이 이렇게 까지 다가오니 모든 것은 힘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절한 모습으로 퇴사를 신청했다. 일단 입원을 다시 하던, 집에서 꼼짝없이 갇혀있던 편측 마비를 야기시키는 모든 자극으로부터 나를 당장 보호해야 했다. 증상이 나를 위협할 때는 회사를 다닐 수 있어, 없어 이 두 가지로 생각이 좁혀졌는데, 퇴사를 감행하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방문했다. 


먼저는 억울함이었다. 나에게 퇴사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망했다는 표현이었다. 그렇다. 사회적으로 나는 망한 것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다시는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많은 선택 중에 하나인 퇴사 정도로 뭘 그렇게 비관적이냐고 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지표를 고려하면 냉정히 그렇다는 것이다. 이성이 살아있었다면 나는 죽더라도 이 일을 하면서 죽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럼 몇 초 뒤에, 계속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달려와서 나를 위로해준다. 


나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몸이었는데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맞은 후 얻게 된 편마비성 편두통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케이스다. 그전까진 얼마든지 야근을 하던, 욕심을 하던, 노동을 하던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오른쪽 팔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가끔 사람들이 내 몸에 대해 물어보면 내가 오른손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 노동이 타이핑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내 증상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여서 그렇지, 나는 가끔 내가 장애를 갖게 된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만큼 내 삶을 달라져버렸다.  


코로나 시대는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코로나 백신이라는 단어로 내 삶을 정의 내려야 한다. 그때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했지만, 이제는 역설적으로 그로 말미암아 사회생활이 어려워졌다. 나는 코로나 백신을 자의로 맞은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특정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자가 의무 접종이 되어서 맞은 것이었기 때문에 더 억울했다. 내가 코로나 백신으로 얻게 된 지병에 대해서는 정부도 보상을 거부했고, 이제 그 병은 나의 사회생활을 망쳐 놓았고 잠재적 수입을 빼앗아 갔다. 이걸 누가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퇴사를 해서 나는 내 신경을 건드려 마비에 이르게 하는 자극 중 한 개를 제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에 받던 수많은 전화들, 이메일들, 슬랙 들에서 자유해진 대신 나는 수많은 질문이라는 또 다른 자극을 얻게 된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9-6로만 일한다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전공과 스펙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더라도 파트타임을 구해봐야 할까?"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일이라는 자극에서 자유한 걸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줄어들자 또, 또 헛된 모의를 도모했다. 정말 나의 간사함의 끝은 놀라웠다. 퇴사 후 찾아온 '이제 죽지는 않겠지.'라는 안도와 '내가 견딜 수 있는 사회생활은 어느 정도이며 언제 다시 시작해야 되는가?'라는 도전을 나를 매일 괴롭혔다. 그렇다. 


퇴사는 거쳐가는 한 가지 선택이었을 뿐, 조금만 무리하면 편측 마비가 발생하는 이 몸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문제는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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