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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5. 2024

쿨한 결론은 없다.

퇴사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수많은 전화와 슬랙, 야근으로부터 자유 해지자, 더 이상 신경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몸은 어때? 괜찮아?"라고 연락이 왔는데, 내가 일을 쉬고 집에 있으니까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 모두 놀라워했다. 퇴사의 효과가 정말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역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었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아프지 않다면, 나는 이제 평생 돈을 안 벌고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일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만 3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편측 마비와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듯했다. 물론 힘겨루기에서 그 녀석이 이겼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자극을 넘어서면 신경 발작이 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인정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당분간 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나는 실업급여라는 것으로 나를 길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신청하지 않는 미련한 선택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앞으로 이런 한계가 분명한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돈을 아예 안 벌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긴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 가라는 숙제도 남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내가 이 안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라는 고민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은 목소리라도 이 안건이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음 담아, 그리고 나처럼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원치 않게 다른 삶을 살게 된 분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말이다. 얼마 전 우리 시대의 연예인 한 분이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3년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코로나 백신 부작용 호소"라고 쓰인 것도 있었다. 명백하게 코로나 백신 이후에 발생한 일인데도, 이것을 호소라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나도 이 책에 제목을 "코로나 백신 부작용 호소인"으로 했지만, 참 호소라는 단어에서 오는 사회적 이질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검색을 하면 최근까지도 발행된 수많은 연관 기사가 뜬다. 최근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해외에서 백신 제조사가 부작용을 인정하고 시장에서 아예 철수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천억 대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던 백신인데, 이제 그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소송할 길이 열린 걸까 라는 생각도 했다.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는 내 마음속 물음표는 점차 늘어났다. 


정말 제조사 들은 공급 당시 부작용을 몰랐을까?

정부는 정말 부작용을 몰랐을까?

부작용이 있다 한들 지금처럼 입증이 거의 불가할 테니 보상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았던 걸까?

혹은 제조사도 정부도 부작용의 퍼센트에이지가 적을 테니 대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 걸까?

제조사들은 백신 공급으로 떼돈을 벌었을 텐데, 정부와 모종의 거래는 없었던 걸까?

더 나아가서 백신이 코로나 감염을 막아주기는 한 걸까? 어차피 백신을 맞은 사람들도 다 걸리지 않았는가?

내가 이게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라고 확신한다면 제조사와 혹은 정부와 소송을 해야 되는 걸까?


국내에서도 코로나 백신 부작용 관련하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건들이 있다고 한다. 다만 아직 까지 승소한 건은 없는 것으로 안다. 정부에서도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대책을 강화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미 한 번 보상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 건지도 막막하다. 보상이 된다고 한들, 사망위로금이 3000만 원이라는데 다른 증상들에 대해서는 변해버린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것에 비해서는 미미한 금액일 것이다. 


누구가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누군가 멀쩡하던 건강을 잃었다는 것을 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원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몸에 버거운 일이기에, 나에게 남은 옵션은 많지가 않다. 변해버린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 말이다. 물론 절대 쉽지가 않다. 가끔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기도 하고 이를 꽉 깨물정도의 억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 글을 멋있게 마무리할 정도로 씩씩하고 쿨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단지 가끔, 하늘을 보며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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