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전학, 세트
인생에서 내 자녀에게만큼은 주고 싶지 않은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한테는 그것이 보증을 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아파트가 보증으로 날아간 덕에, 우리 부모님은 집값으로 돈을 벌기 현재보다 비교적 쉬웠던(?) 세대를 살아오셨음에도 공격적 투자나 실거주 집을 사는 것에도 빚을 내기를 매우 꺼려하셨다. 그 말은 우리는 계속 이사를 다녀야 했고, 나는 전학을 다녀야 했다. 나는 이사는 좋았지만, 전학은 싫었다.
과천 관문초등학교 1학년 오전반에 나는 배치가 되었고, 내 쌍둥이 동생은 오후반에 배치가 되었다. 우리를 돌봐주시던 친척 할머니가 도저히 그러면 힘들어서 못 본다고 하여서, 동생이 오전반으로 오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과천은 지금 같은 부촌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다. 우리는 7단지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냥 공무원 아파트 같은 느낌이었다. 여하튼, 1학년 2학년을 별 탈 없이 마치던 차에, 엄마는 송파구로 전학을 선포하셨다. 전학이 어떤 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문정초등학교 3학년 1반에 쌍둥이 동생과 함께 배치를 받았다.
문정초등학교는 15반까지 었나, 엄청 크고 엄청 사람도 많고, 복잡했다. 2년 동안 다니면서, 학교를 다 돌아다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과천을 사랑했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었지만, 한적한 시골 같은 과천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건 선생님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송파구가 8 학군에 들어간다고 엄마가 아빠를 설득했다는데, 8 학군의 분위기라던가 효과라던가는 사실 얻지 못했던 것 같고 성격만 더 내성적이 되어버린 최악의 전학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을 온몸으로 적응해 냈더니 우리의 전세기간은 끝이 났고, 다음 전셋집은 다시 과천이란다. 다시 예전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니, 괜찮다는 논리로 엄마는 과천 8단지로 전세를 선택했다. 아, 정말 엄마의 교육관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겪어보니 과천이 난 것 같다고. 과천에 돌아가서 살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전학은 정말 11살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게 5학년이었다. 예전 학교고 뭐 고, 전학은 그냥 전학일 뿐이었다. 그래도 전세 집에 2년은 살 테니 전학은 다시 안 해도 되겠지 그런 마음뿐이었다.
다시 전학을 와서 만난 선생님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는데, 차별이 극심한 분이셨다. 어린 우리가 봐도 얼굴이 예쁘거나, 부모님이 돈이 많은 애들만 딱 골라서 예뻐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 아빠 엄마 직업란에는 공무원이라고 쓰여 있을 테니, 뭐 털어 봤자 받아먹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도 미운털이 박혀서 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었나.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우리 집에 선물로 들어온 양주 한 병을 그분께 가져다줬단다. 그게 우리 엄마가 내 학창 시절 동안 유일하게 학교에 온 일인 것 같다. 그때는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랬다. 그렇게 두 번째 전학도 역시나 좋은 기억이 되지 못했다.
학군이라는 입시의 결과물이나 공부하는 분위기 그게 뭐든 좋은 건 좋은 거지만, 더 좋은 건 좋은 선생님 한 분을 인생에서 만나는 일인 것 같다. 혹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얻는 것.
1년 후, 우리 부모님은 좋지 않은 선택을 아주 안 좋은 타이밍에 했고, 우리는 세 번째 전학을 가야만 했다. 아, 정말 또 전학이라니 심지어 6학년이었다.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경기도 산본신도시에 집을 구매하신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