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차멀미가 심했다.
버스는 10분 이상 타지 못하고 아빠 차를 타고 시골이라도 가야 할 때엔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 늘 귀에 검은 봉지를 걸고 타야 했다.
뺑뺑이의 저주로 집에서 2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괴로운 기억이 임신으로 인해 다시 돌아왔다.
매일매일이 멀미의 도가니탕인 이 기분..
안 당해본 사람은 영원히 모르는 생리통 같은 이 괴로움(나는 생리통까지 있다 ㅠㅠ 이마저도 임신을 위한 고통이라니 더 열 받는다!)
눈뜨자마자 바나나를 까먹으며 신랑에게 말했다.
"이 상태로 10개월을 버텨야 한다면 나는 못 살 것 같아..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돼? 이건 뭔가 너무 불공평해"
바나나를 오물거리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주민번호가 2로 시작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육체적 고통은 다 내 몫이라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요즘은 4로 시작한다면서요;;;;)
임심 호르몬은 정말 굉장한 파워를 가진 녀석이어서 내 기분을 자이로드롭 마냥 자유낙하시킨다.
내 몸에 콩알만 한 외부인이 하나 자리 잡은 것만으로 내 육체와 정신에 이만큼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이 콩이 점점 다른 열매로 크기를 바꿔갈 텐데 그땐 어떤 변화가 올지 정말 아찔하다.
제일 친한 친구 둘과 약속을 잡다가 나는 입덧 때문에 멀미가 나서 버스나 지하철도 10분 이상 못 타는 신세이니 나를 좀 데리러 와달라 부탁했다. 물론 데리러 와주었지만 유별나다 핀잔을 준다.
다른 임산부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비교를 한다. 아오 이것들 진짜 당해봐야 아는데!
나중에 아기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석고대죄를 할 거다. 나의 그 무심하고 무식했던 행동들을 사죄할 테다.
안 해보면 모른다. 해봐야 안다. 당해봐야 안다. 겪어봐야 안다. 임신은 무조건 케바케다.
손끝에 가시 하나 박혀도 아프고 불편한데 나는 무려 콩이 박혀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