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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Oct 24. 2021

아무튼, 플라잉요가

한계와 마주하는 좌절과 기쁨

오전 10시. 나는 날아오른다. 하이웨스트 레깅스에 타이트한 크롭 나시를 입고, 연회색 실크 해먹을 다리와 몸통에 묶고서. 10층 천장으로 오르며 통 유리창 너머 하늘에 가까워진다.      


날기 위한 아침은 분주하다. 수소문 끝에 선택한 플라잉 요가 전문샵은 집 근처 분당이 아닌 용인 동백에 있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8.2km의 직선코스. 택시나 자가용으로는 10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직선코스로 가는 버스는 없다. 환승까지 해야해서 버스를 타면 50분 정도 걸린다. 플라잉 요가 50분 수업을 듣기위해 오고 가는 데 두 배의 시간을 쓰는 셈이다. 뚜벅이인 나는, 돌고 돌아 가는 길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버스를 놓친 날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도 하지만, 3년 동안 폭설이 내리던 날 차 사고로 길이 막혀 딱 한번 지각했을 뿐이다.     


 다섯 번째 수술 후, 플라잉요가를 시작했다. 수술 후, 운동을 쉬면서 원래도 경직이 심했던 근육이 나무도막처럼 뻣뻣해졌다. 호르몬치료까지 받아서 에스트로겐이 줄어들자 애써 늘렸던 근육이 스스륵 빠져 몸이 앙상해졌다. 관절과 인대도 약해져 여기저기 삐걱거렸다. 수술 후 다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자, 오랫동안 하던 헬스나 요가 이외에 새로운 운동을 해보고 싶었다. 몸의 근육이 깊고 단단하게 굳어갈수록,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전에도 플라잉요가를 해보고 싶었지만, 생리양도 너무 많고 하혈도 자주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마침, 수술 후 호르몬 약을 먹는 중이라서 생리를 하지 않으니 플라잉요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플라잉요가와 처음 만난 날 알았다. 이 만남은 운명과도 같다는 걸. 해먹을 이용해 다른 운동보다 더 깊게 다양한 근육을 자극할 수 있고, 거꾸로 매달려 혈액 순환을 돕고, 해먹을 이용해 마사지 효과도 볼 수 있으니, 나같은 근육병 환자에게는 구세주같은 운동이었다.


 힘겹게 일으켜 나온, 찌뿌둥하고 나른한 몸은 해먹을 만나면 구석구석 깨어난다. 해먹에 한 팔을 걸고 뒤로 밀면서 몸통을 앞으로 기울여 어깨 앞 근육이 쭈욱 늘인다.해먹에 한 발을 걸고 다른 한 발을 앞뒤로 최대한 벌려 뒷허벅지를 이완시킨다. 뼈에 유착되었던 뻣뻣한 근육이 아우성을 칠 때, 호흡을 내쉬며 집중한다. 그 순간, 구겨진 종잇장 같던 근육이 꿈틀 움직이며 조금씩 탄성을 되찾는다. 차가운 몸에 피가 돌며 온기가 흐른다. 이따금씩 성경의 에스겔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장면을 떠올린다. 경직으로 죽어가던 세포들이 다시 에너지를 찾아서 살아나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몸 뿐 아니라 낙심해서 조각나 있던 마음에도 생기가 흐른다. 밑으로 당기는 중력의 힘과 해먹의 위로 당기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며 몸의 가동범위가 서서히 늘어날 때, 마음의 가동범위도 함께 확장된다.


 해먹을 이용한 스트레칭도 시원하고 좋지만, 플라잉요가의 묘미는 해먹을 이용한 시퀀스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공중에서 해먹을 팔과 다리, 몸통에 감고 여러 가지 자세를 만든다. 다빈치, 비둘기, 팅커벨 등 이름도 다양하다, 단순히 동작만 하는게 아니라 이 동작들을 계속 연결해서 수없이 많은 시퀀스를 만들 수 있다. 매일 운동하더라도 어느 날도 똑같지 않다. 손을 어떻게 잡느냐, 발을 어떻게 위치시키느냐,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가에 따라 다른 동작이 되기 때문에 초 집중을 해야한다. 몸이 아프면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은데, 집중해서 플라잉요가를 하고나면 밀도있는 시간을 채웠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물론, 처음부터 잘 했던 것은 아니다. 공중에서 동작을 해야하는 플라잉요가는 기본적으로 유연성과 근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또한 근력과 유연성이 좋더라도 해먹과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플라잉을 할 때, 해먹에 오금을 거는 동작이 잘 안되면 집에 와서 보자기를 여러개 묶고 다리를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했다. 플라잉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되지 않는 자세도 꽤 있다. 더 많이 경직된 왼쪽다리의 자세는 늘 10퍼센트 부족하고, 굽은 목과 어깨 때문에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때가 많다. 해먹에 매달려 우아한 자세를 취할 때도, 내 등과 팔과 배는 부들부들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잠을 많이 못자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잘하던 동작에서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내 몸의 한계를 마주하고, 또 넘어서는 순간들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플라잉요가를 하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근육과 하지 않았을 자세들을 통해 내 몸의 한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좌절과  내가 선택해서 마주한 한계들은 더 이상 좌절과 한계가 아니다.      


 나를 치료하는 분들이 놀랄 때가 많다. 내 몸이 보기보다 구석구석 깊은 곳까지  아주 많이 굳어서 놀라고, 그렇게 굳은 것보다 훨씬 잘 움직여서 또 놀란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굳어지는 나는, 두시간 영화를 보는 것보다 두시간 운동하는게 덜 힘들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위해서 운동을 해야하지만, 그 덕분에 몸을 단련하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에, 그 통증과 힘께 동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작년 가을, 플라잉요가 자격증을 땄다. 강사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냥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재미있어서, 더 잘하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였다. 어디에 쓸 것이 아니라도, 무엇이 될 것이 아니라도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수십가지 안되는 이유가 있어도 하고 싶은 이유 하나면, 무엇을 시도하기에 충분하다.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다섯시간이상 플라잉 요가를 했다. 추석에도 휴일에도 해먹을 타며 시퀀스를 익혔다. 몸이 뻐근하고 힘이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했던 내 몸의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서고 있었다. 아프기 때문에 잘하게 된 영역이 하나 생겼다.


 플라잉 요가의 단 한가지 단점은 시설이 없으면 연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싶거나 나만의 시퀀스를 만들고 싶을 때 늘 아쉽다. 이따금씩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플라잉요가를 하는 상상을 한다. ‘돈이 많이 생긴다면 천장이 높은 건물의 작은 공간을 마련해야지. 그래서 거기에 연그레이색의 해먹을 설치하고, 그린 색의 매트와 짐볼도 옆에 놓야야지. 그리고 빛이 잠드는 곳에 오크나무로 만든 원목 책상을 두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언제든 글을 쓸 수 있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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