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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의 노하우 Jan 22. 2018

잘 만난 아내는 잘 얻은 며느리이자 훌륭한 엄마이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지난 가을 큰 아이의 유치원 2학기 상담이 있던 날이었다. 아내는 회사를 일찍 퇴근하고 나와 함께 유치원에서 큰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올 봄 입학할 때만 해도 잘 적응을 할까 싶어 걱정이 많았고, 1학기 상담 때만 해도 또래보다 덩치도 작고 밥도 잘 안 먹어 선생님도 함께 걱정을 했었던 아이가, 2학기가 되더니 어느덧 수업시간에 장난이 심해 선생님을 속을 썩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아이가 활달해 졌다는 소식에 마음 속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보다 이 아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는 뿌듯함과 기쁨이 앞섰다. 기분 좋게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둘째를 봐 주고 계시던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안 하시는데, 왠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가 욕실에서 넘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고 얼른 집으로 오라고 하신다.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바삐 집에 들어서니 거실에서 어머니가 둘째를 안은 채 울고 계셨다. 첫째랑 둘째 목욕을 시키는 동안 잠시 한 눈을 팔았는데, 둘째가 넘어졌다고 한다. 어떻게 넘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둘째 입안에 피가 가득하다. 둘째는 아픈 거 보다는 할머니가 울고,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고, 첫째는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오도방정을 떨고 있으니, 불안함에 더 크게 우는 듯 했다. 아내와 나는 우선 둘째를 안고 입안을 살펴봤다.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혓바닥에 상처가 난 듯 했다. 다친 지 한 20분 정도가 지났는데도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는 걸 보고 얼른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울고 계시던 어머니를 달래주고 있고, 첫째는 병원에 따라 가겠다며 혼자 신발을 신으러 가고 있고, 아수라장 같았다. 첫째랑 어머니는 우선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맡겨 놓고, 아내와 내가 급하게 둘째를 안고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로 가는 차 안에서 둘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스마트폰으로 틀어주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응급실에는 아직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외상을 담당하는 쪽은 상당히 더디게 진행이 되었다. 옆에 있던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는 여자아이는 자전거를 타다 체인 사이에 다리가 끼어서 왔다고 하는데,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들어 있었다. 둘째는 다행이 울음은 그치고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초진 시에 물려준 거즈를 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어머니랑 첫째가 걱정 되고, 아주머니도 퇴근할 시간이라 우선 아내는 먼저 집에 가 있기로 했다. 한참을 더 기다려, 담당 의사가 와서 보더니 혓바닥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두경부외과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급하게 사진을 찍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조금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벌써 병원에 온 지도 2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도 지혈이 안되고 피가 계속 나고 있다. 피와 침이 섞여서 물고 있는 거즈 밖으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데도, 아이는 보채지 않고, 얌전히 기다려 준다. 이제 세 돌이 갓 지났는데, 이렇게 대견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몇 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둘째가 놀란 듯이 두리번 거리고는 했지만, 이내 애써 외면을 하려는 듯이 손에 쥔 스마트폰의 화면에 다시금 집중하고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조금 더 기다린 뒤에야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던 침대에 아이를 눕히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상처를 보기 위해 물고 있던 거즈를 들어내는데, 아직도 피가 나고 있고, 생각보다 상처가 넓고 깊다. 내 걱정스런 표정과 눈빛을 보셨는지, 선생님이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주신다. 혀는 주로 근육으로 되어 있어, 피가 많이 나지만, 잘 아물고 후유증도 없을 테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피가 나지 않으면 굳이 봉합하지 않아도 되지만, 상처도 크고 피도 계속 나니 봉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봉합을 위해 마취 주사를 엉덩이에 놓았다. 피가 그렇게 나도 안 울던 아이가 세상 떠나가라 운다. 아이가 우니 마음이 울컥해 진다. 그래도 곧 잠잠해 진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아이의 눈가를 닦아 주며, 언제 마취가 되나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은 마취가 된 상태라며 봉합을 시작하신다. 혀 안쪽이 찢어져서 혼자 봉합을 할 수 없어 내가 도와 드려야 한다. 내가 아이 입을 벌리고 있으면 선생님이 봉합을 하시는데, 아이 입도 작고, 워낙 안쪽이라 한 땀 꿰매는 것도 쉽지가 않다. 15분 정도에 걸쳐 5바늘 정도를 꿰맸다. 내 손도 아이의 피와 침이 뒤범벅이 되었다. 선생님이 괜찮을 거라고 다시 한번 안심을 시켜 주시고, 나는 아이를 안고 회복실로 옮겼다. 마취에서 이상 없이 깨어나면 퇴원약을 받아서 퇴원하면 된다고 한다. 아이 침대 옆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데, 자꾸 마음이 울컥해지며 눈물이 나오려 한다. 아이 손끝에 달려있는 맥박측정기가 아이 손을 너무 꼭 누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모니터에 나오는 숫자가 조금씩 바뀔 때마다 가슴이 지레 철렁거린다. 아이는 마취가 되어 있는데, 계속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40분이 조금 넘게 지나자 아이가 조금씩 몸을 뒤척인다. 손끝에 달려있는 맥박측정기가 아무래도 불편한지 자꾸 빼내려 한다. 이걸 빼내면 아이의 맥박 측정이 안되고, 그러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도 알아채지 못할까 싶어 굳이 나는 그걸 싫다는 아이의 손에 다시 메달아 놓는다. 마취로 인한 의료사고들이, 특히나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내용의 뉴스와 이야기들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다 보니 아이가 싫어해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20여분의 실랑이를 하고 나니, 아이가 조금 더 정신이 돌아온다. 아빠가 옆에 있다고 안심시키고 안아주자,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마취에서 깨어나 첫 마디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니, 마음이 다시 울컥한다. 이 어린것이 얼마나 아프고, 무섭고 또 힘들었을까 싶다. 선생님한테가서 퇴원 가능 여부를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집에 와서 약기운이 남아 있는지 다시금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하루 정도 지나서는 밥도 잘 먹고 잘 놀았다. 약을 잘 먹어서인지, 일주일 정도 지나 다시 간 병원에서 잘 아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응급실에서 거칠게 매듭지어 놓은 실밥들을 불편하지 않게 정리해 주시고 가슴 저렸던 치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 사건이 잊혀져 갔었다. 얼마 전, 둘째가 다치고 난 뒤 약 3개월 정도가 지나 광주에 사시는 이모댁에 아이들하고 함께 방문을 했었다. 2박 3일 동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마지막으로 아침을 함께 먹은 뒤 과일과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이모가 문득 둘째가 다쳤던 이야기를 꺼내신다.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었다고, 그리고 둘째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언니가 평소에서 너 장가 잘 갔다고 했는데, 현우 다쳤을 때 다시 한번 느꼈대. 현주가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지 새끼가 다쳐서 피가 철철 나고 있는데, 들어와서는 지 새끼 걱정보다는 어머니 괜찮으신지 먼저 물어보더라고, 정말 며느리 잘 얻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들어오는 순간 다친 아이를 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고 있는 어머니가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세심하게 챙겼던 것이다. 이모에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내 스스로가 부족함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반성도 되면서, 한켠으로는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또 감동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내를 잘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며느리를 잘 얻었고, 아이들은 훌륭한 엄마를 두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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